'몸짱' 욕심에…10대까지 손대는 스테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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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선 마약류로 관리하는데…경기 용인시의 한 헬스장을 다니는 최모씨는 얼마 전 개인강습(PT)을 하는 헬스 트레이너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근육을 단기간에 부풀릴 수 있도록 돕는 스테로이드를 맞은 뒤 ‘보디프로필’을 찍어 보자는 것. 운동 전후의 사진을 헬스장에 걸어 홍보에 도움을 주면 PT 비용을 할인해주겠다는 제안까지 했다. 최씨는 “헬스장 한쪽 쓰레기통에 버려진 주사기들의 용도를 그제야 알게 됐다”며 “10대도 많이 한다는 트레이너의 말에 다시 한번 놀랐다”고 했다.
"단기간 근육 키워" 무분별 확산
오남용땐 심장병·불임 등 부작용
SNS서 불법 유통…청소년 유혹
경찰 "마약류 아니다" 단속 손놔
○보디프로필 열풍에 스테로이드 남용
운동 전후의 몸 사진을 찍는 보디프로필 열풍 속에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아 사용하는 일반인이 늘고 있다. SNS나 주요 포털 사이트 검색으로 쉽게 살 수 있어 10대까지도 위험한 약물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본지가 4일 텔레그램을 통해 스테로이드를 판매하는 판매상 다섯 곳과 대화해본 결과, 대부분 단 하루면 스테로이드를 배달받을 수 있었다. 한 판매상은 스테로이드를 구매하고 싶다는 질문에 수십 종류의 스테로이드 목록이 담긴 엑셀 표를 보내주며 “한 달에 30만원씩 넉 달만 주사를 맞으면 된다”고 유혹했다. 다른 판매상은 어떻게 스테로이드를 구매하면 좋을지 상세히 설명까지 해줬다. 그는 “스테로이드는 2~4개를 함께 복용해야 효과적”이라며 “다이어트를 원하는지, ‘벌크업’(근육 키우기를 지칭)을 원하는지 등에 따라 복용하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판매자들은 ‘전국 어디든 당일 배송’이라고 광고했다.
그러나 개인 간 스테로이드 거래는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적발 시 약사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김영상 분당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스테로이드를 꾸준히 맞으면 우울감과 간암, 심장병, 불임, 고혈압 등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반드시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에선 스테로이드를 마약류로 분류해 관리한다.운동 관련 정보가 많은 유튜브 등에서 일부 헬스 트레이너가 죄의식 없이 스테로이드 복용을 권하는 분위기도 문제다. 일부 트레이너는 초보자의 경우 어떤 스테로이드 조합이 좋은지까지 조언하고 있다. 한 유튜버는 “호기심 차원에서 스테로이드를 한 번 맞아볼 만하다”며 “운동 효과가 좋아지는 걸 느끼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단속에 손 놓은 경찰
스테로이드는 건강에도 치명적이다. 김 교수는 “남성호르몬이 외부에서 주입되면 몸 안에서 남성호르몬을 만드는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발기 부전과 무정자증은 물론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이 때문에 경찰이 나서 불법 거래를 적극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경찰은 국내 법상 마약으로 분류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단속 등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스테로이드가 마약류가 아니라 관련된 통계나 자료가 없다”며 “고소·고발이 됐을 경우에만 사건을 취급한다”고 말했다.관리 주체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온라인 판매가 적발되더라도 관할 지방자치단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 통보만 하고 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관계자는 “오남용과 중독성 등을 놓고 봤을 때 마약만큼 위험한 물질”이라며 “특히 식욕 억제 기능이 있는 필로폰과 병행 복용하는 사례가 많아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철오/안정훈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