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이코노미] 천재 창업자 소멸과 넘치는 자본이 낳은 시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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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S11
(99) 디지털 경제와 스타트업돈이 땀보다 귀해졌다. 자본소득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았다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누구나 현금보다 주식을 소유하는 것이 부를 증식하는 쉬운 방법이라는 점을 안다. 미국 시장을 기준으로 할 때 좋은 소식은 미국 주식의 절반을 일반 가계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며, 나쁜 소식은 미국 주식의 89%는 가장 부유한 10%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족한 천재 창업자와 넘쳐나는 자본의 결합은 시장을 왜곡. 시대를 막론하고 자본주의에서 기업의 가치는 성장과 이윤을 통해 형성.
창업자의 권력 회복
이유야 어떻든, 이런 현상 덕분에 투자할 곳을 찾는 자본이 많아졌다. 그 혜택을 많이 받은 대상 중 하는 스타트업일 것이다. 요즘 기술 스타트업은 자본화가 잘 돼 있어 충분한 자본을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시장의 수용성이 높아져 수개월 안에 해당 분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과거라면 몇 년 혹은 몇십 년 걸릴 일이었다. 이 같은 변화는 창업자의 권력이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창업자와 자본을 대는 경영진 사이의 긴장감은 대체로 높았다. 원대한 비전을 품은 괴팍한 백인 청년 창업자는 회사 확장을 위해 데려온 나이 들고 노련한 경영자를 이기기 어려웠다. 1985년 스티브 잡스가 괴팍하고 고집스럽고 변덕이 심하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권력은 창업자들에게 돌아왔다.과거에는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가진 천재는 가득하고 자본을 구하기가 어려웠지만, 10년 뒤에는 반대였다. 진정한 천재는 많이 양성되지 못했지만, 이용 가능한 자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빌 게이츠는 처음으로 창업자가 자기 회사 가치를 1000억달러까지 늘릴 수 있음을 증명했다. 스티브 잡스는 회사에서 쫓겨났지만, 그를 대신했던 스컬리, 스핀들러, 에밀리오 등은 회사를 전혀 성장시키지 못했다. 잡스가 복귀하고 20년 뒤 애플의 가치는 처음보다 200배나 높아졌다.유니콘의 등장
부족한 천재와 넘쳐나는 자본의 결합은 자본 위주의 성장전략을 수립하도록 만든다. 즉, 손해를 보면서까지 제품을 많이 판매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저렴한 자본을 바탕으로 성장을 추구해 회사의 가치 평가액을 높인 뒤 이를 바탕으로 다시 후속 투자를 유치해 자본을 늘리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민간 자본을 확보한 기업들은 상장 전에 적자만 기록하는 회전목마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다.1996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의 신규 상장사 수는 88% 감소했고, 상장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도 20년 전 3년에서 현재 8년으로 늘었다. 오늘날 새로운 유형의 스타트업인 ‘유니콘’이 출현한 배경이다. 유니콘은 기업가치가 10억달러인 신생 기업이 드물었던 2013년 벤처 투자가 에일린 리가 만든 용어다. 리는 39개의 기업을 찾아냈고, 매년 4개의 유니콘 기업이 생길 것으로 예측했다. 2022년 2월 기준 유니콘 기업은 1000개를 돌파했고, 2021년 10월부터 약 5개월 만에 130개나 증가했다. 문제는 유니콘이 급증했다는 점보다 이들 중 일부가 ‘척’만으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될 때까지 그런 척하면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라는 ‘척’ 말이다. 많은 유니콘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지만, 성장과 이윤을 위한 가치 제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