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너무나 달랐던 두 피아니스트 [클래식 리뷰]

'베토벤&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No.3' 공연 리뷰
오브차로프의 월광 소나타는 다소 통속적
라쉬코프스키의 쇼팽 녹턴은 명징하고 유려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왼쪽)와 피터 오브차로프.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피아노 듀오가 아닌 이상 피아니스트 두 명을 한자리에서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만으로도 지난 5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베토벤&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No.3' 공연은 흥미를 끌 만했는데, 두 피아니스트의 연주 성향이 거의 극단적으로 달랐다는 점이 더욱 흥미를 자극했다.둘 가운데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사진 왼쪽)는 우리나라 무대에 오랫동안 선 인물이고 나 역시 그의 연주를 몇 번 들었다. 다만 실내악 반주자로는 자주 접했지만, 이번처럼 협연자나 독주자로 나선 경우는 처음이었다. 반면 피터 오브차로프는 아직까지 인연이 닿지 않았는데 이번에 비로소 연주를 듣게 됐다.

공연은 전반부와 후반부 모두 두 피아니스트가 연이어 무대에 서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먼저 오브차로프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첫머리를 열었다.

1악장과 2악장은 뭐라 덧붙일 말이 없을 정도로 정석적인 연주였다. 3악장은 이 악장과 관련해 사람들이 흔히 떠올릴 법한, 과감하게 질주하는 스타일의 연주였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이렇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더 드문 편이다.따라서 3악장만은 정석적이라기보다는 ‘통속적’인 연주였다고 부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잘만 연주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오브차로프는 개개의 음을 뚜렷하게 살리는 데 조금 무심한 경향이 있었고 군데군데 음을 빠뜨리거나 잘못 친 부분이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반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에서 독주를 맡은 라쉬코프스키는 양손의 비중을 고르게 유지하면서 시종일관 강하고 명징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런 스타일의 연주에 최적화된 스타인웨이 피아노 특유의 음색과도 무척 잘 맞는 연주였다.

모든 것을 또렷하게 연주하려는 열의가 좀 지나쳐 연주의 전체적인 음영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매우 훌륭한 연주였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2부에서 독주를 맡은 것은 라쉬코프스키였는데, 이번에는 쇼팽의 녹턴 두 곡을 연주했다. 여기서 그는 여전히 명징하면서도 유려하고 시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호연이었다.

오브차로프가 협연자로 나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의 경우 빠른 악장에서 음이 뭉개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특히 1악장 카덴차는 너무 빠르기만 하고 단조롭게 들렸다. 3악장 역시 오케스트라와 호흡이 안 맞는 대목이 더러 있어 안타까웠다.

최영선이 지휘한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는 베토벤 협주곡에서는 아주 적절한 반주를 들려준 반면, 라흐마니노프에서는 심벌즈를 비롯한 타악기를 제외하면 내내 소극적인 연주를 들려주다가 3악장 맨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다. 프로그램 노트의 내용 자체는 문제 삼을 데가 없었지만, 작성자의 이름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나 역시 프로그램 노트를 종종 쓰는 입장인지라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내용이 좋건 나쁘건 간에 글을 써놓고 익명성의 뒤로 숨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다. 자기 이름을 숨기고 공연 무대에 서는 연주자는 없다. 글 쓰는 사람이 달라야 할 이유가 있을까.

황진규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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