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앤 무비] ⑤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롭다면…'혼자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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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영상이 문자를 압도하는 시대를 맞았습니다.
연합뉴스는 OTT(온라인동영상 서비스) 시대에 발맞춰 전북지역 현안과 사건·사고를 톺아보고 이를 영화, 문헌과 접목해 인문학적 고찰을 시도하는 기사를 2주에 한 번씩 10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현대인과 고독은 떼어낼 수 없다. 고독의 뜻은 어느새 '외로움'이라는 감성으로 대치되고 있다.
신학자 폴 틸리히에 따르면 외로움은 '혼자 있는 것의 아픔'을, 고독은 '혼자 있는 것의 영광스러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감독 홍성은·2021년 개봉)은 고독과 외로움으로 점철된 시대상을 다룬 작품이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늘 혼자가 편한 진아(공승연). 신용카드사 콜센터 상담사인 그는 매일 똑같은 일상, 똑같은 하루를 홀로 보낸다.
이어폰을 끼고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고 점심시간에도 홀로 쌀국수를 먹으러 가는 게 편하다.
한 달 카드 명세서를 읊으라는 진상 고객을 상대하는 것보다 신입사원 수진(정다은)을 일대일로 교육하는 게 더 불편하다. 심지어 진아와 친하게 지내기 위해 쌀국숫집까지 따라온 수진과 따로 떨어져 먹을 정도다.
그에게 '타인은 지옥'이다.
이른바 '자발적 홀로족'이다.
엄마는 세상을 떠났고 바람이 나 가정을 버린 뒤 엄마의 죽음 이후 돌아온 아버지는 거리 좁히기에 노력하지만, 그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다.
어느 날 매번 말을 걸던 옆집 남자의 죽음을 알게 되면서 잔잔한 일상이 조금씩 흔들린다.
제대로 말 한번 섞지 않은 이웃의 죽음에 그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인사 좀 해주지"라고 건넸던 이웃 남성의 마지막 말이 자꾸 떠오른다.
불편하게 여겼던 수진마저 '잠수'를 탄다.
게다가 새로 옆집에 이사 온 남자 성훈(서현우)는 자꾸 신경을 긁는다. 죽음의 순간에는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듯, 성훈은 고독사한 남성의 장례를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마음을 다해 치러준다.
그는 영화에서 가장 관계지향형 인물이다.
진아는 시종일관 무표정하다.
환한 웃음 한번 보이지 않는다.
전화응대는 사무적이고 차갑지 않은 적정 온도를 유지한다.
영화는 일상의 외로움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동시에 인간관계에서의 '넘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아는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관심이 없다.
누군가와 엮이기가 싫은 것이다.
자신의 영역에 타인이 들어오는 것을 끔찍이 싫어할 뿐이다.
홍성은 감독은 "고독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면서 '과연 혼자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한다.
감독은 "고립된 인물들이 타인과의 관계가 지닌 미래의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진아와 같은 1인 가구는 더는 낯선 모습이 아니다.
2021년 기준 전북 도내 1인 가구 수는 27만6천 가구로 집계됐다.
전체 일반 가구 수 77만2천 가구의 35.1%를 차지한다.
2019년 23만9천 가구(31.8%), 2020년 25만5천 가구(33.2%)와 견줘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1인 가구 급증세는 고령화와 결혼 연령 상승 등 인구 구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수명 증가로 홀몸 노인이 늘어난 데다, 경제적 문제 등으로 결혼하지 않거나 늦추는 경향이 뚜렷하다.
혼자 사는 삶은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의 문제로 귀결되지만 이면에는 사회적 연결망의 부재, 사회적 방임 속에 고통받는 이들이 존재한다.
진아의 옆집 남자가 그 사례이다.
외로움을 '사회적 감염병'으로 정의한 영국은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직을 신설해 국가적 대응책을 마련했다.
외로움의 감소가 의료비는 물론 범죄, 극단적인 선택을 줄이는 것과 직결되는 정책 의제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북지역도 2040년에는 1인 가구가 42.5%에 도달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외로움이 더 이상 개인의 심리 상태가 아닌 사회적 질병으로 봐야 한다는 관점이 주목받고 있다.
1인 가구 증가는 전국적 현상이지만, 전북도는 2022년 제정된 '1인 가구 지원 조례'를 근거로 연령·성별에 따른 맞춤형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자발적 고독자나 이미 사회적으로 단절된 이들의 적극적 참여를 끌어내기는 요원하다.
인간관계의 장점은 취하되 과한 연결이 주는 부담은 덜어내는 '느슨한 연대(Weak Ties)'가 최근 주목받는 이유다. ※ 참고 문헌 : 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연합뉴스
연합뉴스는 OTT(온라인동영상 서비스) 시대에 발맞춰 전북지역 현안과 사건·사고를 톺아보고 이를 영화, 문헌과 접목해 인문학적 고찰을 시도하는 기사를 2주에 한 번씩 10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현대인과 고독은 떼어낼 수 없다. 고독의 뜻은 어느새 '외로움'이라는 감성으로 대치되고 있다.
신학자 폴 틸리히에 따르면 외로움은 '혼자 있는 것의 아픔'을, 고독은 '혼자 있는 것의 영광스러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감독 홍성은·2021년 개봉)은 고독과 외로움으로 점철된 시대상을 다룬 작품이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늘 혼자가 편한 진아(공승연). 신용카드사 콜센터 상담사인 그는 매일 똑같은 일상, 똑같은 하루를 홀로 보낸다.
이어폰을 끼고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고 점심시간에도 홀로 쌀국수를 먹으러 가는 게 편하다.
한 달 카드 명세서를 읊으라는 진상 고객을 상대하는 것보다 신입사원 수진(정다은)을 일대일로 교육하는 게 더 불편하다. 심지어 진아와 친하게 지내기 위해 쌀국숫집까지 따라온 수진과 따로 떨어져 먹을 정도다.
그에게 '타인은 지옥'이다.
이른바 '자발적 홀로족'이다.
엄마는 세상을 떠났고 바람이 나 가정을 버린 뒤 엄마의 죽음 이후 돌아온 아버지는 거리 좁히기에 노력하지만, 그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다.
어느 날 매번 말을 걸던 옆집 남자의 죽음을 알게 되면서 잔잔한 일상이 조금씩 흔들린다.
제대로 말 한번 섞지 않은 이웃의 죽음에 그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인사 좀 해주지"라고 건넸던 이웃 남성의 마지막 말이 자꾸 떠오른다.
불편하게 여겼던 수진마저 '잠수'를 탄다.
게다가 새로 옆집에 이사 온 남자 성훈(서현우)는 자꾸 신경을 긁는다. 죽음의 순간에는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듯, 성훈은 고독사한 남성의 장례를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마음을 다해 치러준다.
그는 영화에서 가장 관계지향형 인물이다.
진아는 시종일관 무표정하다.
환한 웃음 한번 보이지 않는다.
전화응대는 사무적이고 차갑지 않은 적정 온도를 유지한다.
영화는 일상의 외로움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동시에 인간관계에서의 '넘지 말아야 할 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아는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관심이 없다.
누군가와 엮이기가 싫은 것이다.
자신의 영역에 타인이 들어오는 것을 끔찍이 싫어할 뿐이다.
홍성은 감독은 "고독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면서 '과연 혼자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한다.
감독은 "고립된 인물들이 타인과의 관계가 지닌 미래의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진아와 같은 1인 가구는 더는 낯선 모습이 아니다.
2021년 기준 전북 도내 1인 가구 수는 27만6천 가구로 집계됐다.
전체 일반 가구 수 77만2천 가구의 35.1%를 차지한다.
2019년 23만9천 가구(31.8%), 2020년 25만5천 가구(33.2%)와 견줘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1인 가구 급증세는 고령화와 결혼 연령 상승 등 인구 구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수명 증가로 홀몸 노인이 늘어난 데다, 경제적 문제 등으로 결혼하지 않거나 늦추는 경향이 뚜렷하다.
혼자 사는 삶은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의 문제로 귀결되지만 이면에는 사회적 연결망의 부재, 사회적 방임 속에 고통받는 이들이 존재한다.
진아의 옆집 남자가 그 사례이다.
외로움을 '사회적 감염병'으로 정의한 영국은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직을 신설해 국가적 대응책을 마련했다.
외로움의 감소가 의료비는 물론 범죄, 극단적인 선택을 줄이는 것과 직결되는 정책 의제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북지역도 2040년에는 1인 가구가 42.5%에 도달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외로움이 더 이상 개인의 심리 상태가 아닌 사회적 질병으로 봐야 한다는 관점이 주목받고 있다.
1인 가구 증가는 전국적 현상이지만, 전북도는 2022년 제정된 '1인 가구 지원 조례'를 근거로 연령·성별에 따른 맞춤형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자발적 고독자나 이미 사회적으로 단절된 이들의 적극적 참여를 끌어내기는 요원하다.
인간관계의 장점은 취하되 과한 연결이 주는 부담은 덜어내는 '느슨한 연대(Weak Ties)'가 최근 주목받는 이유다. ※ 참고 문헌 : 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