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폭염 속 태국 총선 사전투표 행렬…"더 나은 미래 기대"

"새 인물 원한다" 야권 인기…'구관이 명관' 군부 지지자도
5·14 태국 총선을 일주일 앞둔 7일, 극심한 폭염이 태국 전역을 덮쳤다. 방콕 최고 기온이 39도를 기록한 이날 체감온도는 53도에 육박했지만, 시민들의 투표 열기를 꺾지는 못했다.

사전투표일인 이날 방콕 라자망갈라 국립경기장 옆에 있는 람캄행대는 투표 인파로 캠퍼스 전체가 마치 대규모 축제 현장처럼 북적였다.

람캄행대는 방콕 곳곳에 마련된 투표소 중 가장 많은 약 5만3천명이 사전투표를 신청한 장소다. 땡볕 아래 설치된 간이 천막 밖까지 긴 줄이 이어졌다.

당국은 더위를 식히려 살수차까지 동원했고, 시민들은 양산을 들고 음료수를 사 먹으며 순서를 기다렸다.

이 대학 출신이라는 위라차이(47·가명) 씨는 "지난 총선보다 열기가 뜨거운 것 같다"며 "더 나은 미래를 바라는 사람들이 투표장에 많이 나왔고, 나 역시 변화를 원한다.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배후에 있는 제1야당 프아타이당을 비롯한 야권이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꽃 배달 사업을 하는 쁘라까싯(74) 씨는 탁신 전 총리의 지지자라며 "군 출신의 현 정권은 경제를 잘 이끌지 못했고, 변화가 필요하다"며 "탁신과 그의 여동생 잉락 (전)총리 다음으로 패통탄이 예전의 정책들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탁신과 잉락이 해외 도피 중인 가운데 이번 선거에는 탁신의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이 프아타이당의 총리 후보로 나섰다.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진보 정당 전진당(MFP)의 인기도 실감할 수 있었다.

투표장에 나온 시민 다수가 '변화'를 강조하며 전진당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회사원 나루몬(24) 씨는 "전진당 피타 대표는 옛날 시대 사람들과 달리 생각이 신선하고 신뢰할만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며 고물가를 해결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진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유치원 교사 쁠라(43) 씨는 "그동안 오랜 세월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통치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며 "새로운 시대의 사람이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전진당 피타 림짜른랏 대표는 총리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프아타이당 패통탄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전진당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야권의 압승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인근의 대형 재래시장인 방까피시장의 민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전투표 현장보다 선거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지만, 그곳에서도 변화를 원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나왔다.

과일가게에서 만난 삐라뽄(72) 씨는 "태국인들이 새로운 시도를 바라고, 현 정권 아래에서 행복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며 새로운 시대의 사람이 총리가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전진당의 지지층은 주로 젊은 세대로 알려졌지만, 현 정권에 등을 돌린 고령층 지지자도 있었다.

옷 가게 주인 니빠(85) 씨는 "현 정권은 경제고 뭐고 실망스럽다"며 "군인 출신 옛날 사람들이 아니라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진 요즘 사람이 나라를 이끌기 바란다"고 말했다.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뒤 2019년 총선에서 연임에 성공한 쁘라윳 짠오차 현 총리는 루엄타이쌍찻당(RTSC)의 후보로 나서서 집권 연장을 노린다.

친(親)군부 정당의 지지율은 부진하지만, 야권이 총선에서 승리해도 정권교체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2017년 군부가 개정한 헌법에 따라 총리 선출에는 하원 의원 외에 군부가 임명한 상원 의원 250명도 참여하기 때문이다.
젊은 정치인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구관이 명관'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퇴직 공무원이라는 수띠폰(76) 씨는 "쁘라윳 총리가 나라 관리를 잘해왔고, 도로와 지하철 등 교통도 좋아졌다"며 "모두 장단점이 있겠지만 쁘라윳 총리가 가장 안정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전진당의 인기는 홍보 효과 등으로 기대가 커진 것이며, 탁신 정권은 과거 부패가 심했다"며 "최소한 지금이 그때보다 부패는 덜 하다"고 말했다.

전진당 지지자는 상대적으로 수도권에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탁신계의 텃밭은 태국 북동부 지역이며, 쁘라윳 총리는 남부에서 인기가 있다.

이번 총선의 유권자는 약 5천200만명이다. 사전투표는 전국에서 약 223만여명이 신청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