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열세 살'을 만나고 싶다면…연극 '댄스 네이션' [연극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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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드라마 부문 후보 올라누구나 '열세 살'일 때가 있다. 몸과 마음에 찾아오는 낯선 변화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혼란스러운 시기. 뭐든 다 이룰 수 있을 것처럼 큰 꿈에 부풀었다가도 문득 자괴감에 사로잡혀 '뻥' 터져버릴 것만 같은 그때. 연극 '댄스 네이션'은 부풀어오른 풍선처럼 불안한 십대 초반의 사춘기, 그러다 결국 터져버린 줄로만 알았던 그 시절이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환기해 준다.
30~60대 배우들이 10대 청소년 연기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자는 메시지
최근 서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개막한 연극 '댄스 네이션'은 미국의 극작가 클레어 배런의 작품이다. 2018년 미국 뉴욕 오프브로드웨이(브로드웨이 중심가에서 벗어나 중형 극장들이 모인 곳)에서 공연해 호평을 받았고, 이듬해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뉴욕타임스는 이 작품을 두고 "생생한 날카로움과 통렬함으로 청소년기에 느끼는 강렬한 양가감정을 소환한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두산아트센터의 기획 공연 '두산인문극장'으로 처음 국내 관객들을 만난다.
다양성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연극 내용은 댄스 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인데, 배우 중에 10대를 비슷하게 재현하려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배우들이 저마다의 열세살을 연기한다. 이들은 10대처럼 보이려고 분장을 한다거나 억지로 노력하지 않는다. 장애를 가진 배우들도 출연하지만 결코 장애를 소재로 삼지 않는다. 배우들은 그저 있는 그대로 자신들의 10대를 불러낸다.관객들은 작품 속 각자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을 지켜보며 자기만의 열세살을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본인이 아닌 엄마를 위해서 댄서란 꿈을 꾸는 주주, 늘 지켜온 1등 자리에서 처음으로 밀려나 혼란스러워하는 아미나, 자기가 제일 똑똑하고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속으로 그 생각과 욕망을 꽁꽁 숨긴 애슐리….사춘기 시절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법한 서사를 통해 관객들은 그 시절 경험한 사건과 감정이 여전히 자신의 몸과 마음에 남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중간 중간 다소 도발적인 소재들이 등장한다. 자위나 생리혈이 연출된 장면이 있는가 하면, 여성의 생식기가 가사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노래를 단체로 부르기도 한다. 노래까지는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10대 여성 청소년이 본인의 몸을 있는 그대로 긍정적이고 자신 있게 바라보자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기 보다는, 관객 스스로 자기만의 메시지를 만들어서 나가길 원하는 연극이다. 기승전결이 있는 서사를 통해 감동받는 데 익숙한 관객이라면 조금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른바 소수자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한다.공연은 5월 20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