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열음이 건넨 '니콘 텀블러'와 예술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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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손열음. 사진=구본숙
내가 사진의 길을 걸어가게 된 것은 대다수 사진작가 그렇겠지만 시각적 매력에 이끌려서였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어느덧 사진과 함께한 세월만 26년에 이른다. 그리고 그 가운데 20년을 클래식 공연 현장에서 보냈다. 약 500회에 달하는 기획공연 촬영에서 연주자들의 리허설과 본공연 사진을 촬영했고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도 30회가량 촬영했다.K문화재단에 몸을 담게 되면서 공연 영상 기록 담당이 되었고, 나중에는 재단 관련 행사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 문화재단은 클래식 음악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자체 음악회도 많이 열었기 때문에 자연히 내 업무도 클래식 공연 위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 촬영을 시작할 무렵에는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이었다. 이름을 아는 작곡가라고는 음악 교과서에서 봤던 사람들 정도였고, 음악을 들어본 것도 카페 같은 곳에서 배경음악으로 틀어주는 것 아니면 FM 라디오로 잠깐 들어본 게 전부인 상태였다.
이렇게 시작하게 되었는데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리허설 촬영 때면 솔직히 말해 매번 미치도록 떨렸다. 솔로 연주 소리만 가득한 홀 안에서 심하게 요동치는 내 심장 소리가 들릴까 걱정되고, 이따금 연주자랑 눈이 마주치면 내 셔터 소리를 거슬려하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새가슴이 되었다. 음악을 잘 모르니 어느 순간에 셔터를 눌러야 하나 싶은 고민과 중압감에 잔뜩 사로잡혔고, 한동안은 동물적 감각에 의존해야 했다. 그러다가 점차 요령과 눈치가 생겼고 심리적으로도 안정을 찾아서 연주가 고양되는 순간에 연사 촬영으로 빠른 포착을 하며, 조용한 파트에선 숨죽이며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점차 객석에서 무대 위로 슬금슬금 올라가는 행동도 시작했다. 잘 찍고 싶은 욕심이 점점 커져갔다. 서툰 가운데서도 열심히 촬영하다보니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으나 그래도 울렁증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답은 하나였다. 너무 많이 생각할 필요 없고, 한 번에 하나씩 알아가자고 스스로 되뇌었다. 연주자들은 무대 위 긴장감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긴장감을 잘 이겨내야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법이고, 내게도 이건 절박한 과제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당시의 긴장감은 심장이 터지지 않은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한동안 필름으로 촬영하다가 2004~5년을 기점으로 카메라 시장의 판도가 디지털 카메라로 완전히 넘어가면서 회사에서 캐논 20D 카메라를 사주었다. 필름으로 졸업한 사진과 출신이라 어도비 사진 편집 프로그램에 디지털카메라를 익히는데 많이 낯설었다. 클래식 음악도 처음인데 디지털 카메라도 처음이라 살짝 이중고였다. 하지만 점차 새로움, 처음이 주는 묘한 떨림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만났을 때의 환상적인 쾌감에 맛을 들이게 되었다.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선물한 니콘 렌즈 모양의 텀블러. 사진/ 구본숙
그렇게 지내다가 2000년대 어느 해인가 니콘 렌즈 모양 텀블러(tumbler)를 손열음 피아니스트에게서 선물받았다. 공연 당일 리허설 때 무대 뒤로 갔더니 손열음이 ‘이게 보여서 작가님 생각이 나서 샀다’고 웃으며 주는데, 속으로 당황하면서도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텀블러도 마음에 들었지만, 손열음은 선물 때문에 비로소 기억나는 연주자가 아니라 내게 클래식을 알게 해준 첫 연주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손열음 피아니스트는 정상급 스타였다. 나는 그녀를 통해 클래식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피아노곡을 끝까지 들어보기 시작했다. 2005년 제1회 K음악인상 수상자가 되면서 접할 기회는 더 많아졌고, 당연히 천재 피아니스트에게 관심이 증폭되어 갔다.
당시 연주자는 19세였고, 낯을 많이 가리며 사진 찍히기를 무척 싫어하는 소녀였다. 지금이야 경험이 많으니 사진 울렁증 따위는 없을 거라고 짐작하지만…. 어쨌든 카메라 부속 장비 스피드 라이트(인공 광원 플래시) 상단의 접었다 폈다 하는 부분에 손열음 사인을 받아 훈장처럼 자랑하며 다녔다. 정상급 피아니스트의 자부심을 이입시킨다고나 할까. 이렇게 그녀의 사진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더 잘 찍고 싶은 욕망도 생기기 시작했으나 지금 보면 어색한 컷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연습이 최고의 결과를 낸다고 하지 않는가. 점차로 원하는 사진, 나만의 느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무대 위 연주자에겐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연주를 하면서 나오는 최고의 표정, 떨림, 숨막히는 여백의 시간. 그런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또한 음악을 하는 ‘인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래서 오랜 시간 관찰하는 습관도 생기기도 했다. 불필요한 것은 버리고, 조명 변화 및 노출도 다르게 다양한 사진을 시도하기도 했다. 인물사진의 거장 유서프 카쉬(Yousuf Karsh)가 찍은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의 첼로 켜는 뒷모습,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vsky)의 사진처럼 나도 기억에 남는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음악가들을 촬영한 사진을 주의 깊게 보며 정해진 시간 내에 피사체의 본질을 포착하는 감각을 키우고자 노력했고, 그 많은 테스트에 손열음 피아니스트가 시발점이 되었다. 그래서 늘 고맙고 기억할 수밖에 없는 연주자이다.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또 하나의 추억을 이 자리를 빌어 말해본다. 2010년 월간지에 우리 둘의 투샷 사진과 글이 나간 적이 있다. 기사 말미에 적힌 글이 마음에 들어 인용해본다.
“…한 명은 피아노, 한 명은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지만, 결국 그들은 예술을 말하고 있다.” ⓒ sceneCLUB Media앞으로도 손열음이 계속 최고의 예술가로서 나아가길 응원하며…. 우리의 예술을 위하여!
※글, 사진은 연주자의 허락하에 사용합니다.
내가 사진의 길을 걸어가게 된 것은 대다수 사진작가 그렇겠지만 시각적 매력에 이끌려서였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어느덧 사진과 함께한 세월만 26년에 이른다. 그리고 그 가운데 20년을 클래식 공연 현장에서 보냈다. 약 500회에 달하는 기획공연 촬영에서 연주자들의 리허설과 본공연 사진을 촬영했고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도 30회가량 촬영했다.K문화재단에 몸을 담게 되면서 공연 영상 기록 담당이 되었고, 나중에는 재단 관련 행사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 문화재단은 클래식 음악가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자체 음악회도 많이 열었기 때문에 자연히 내 업무도 클래식 공연 위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 촬영을 시작할 무렵에는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이었다. 이름을 아는 작곡가라고는 음악 교과서에서 봤던 사람들 정도였고, 음악을 들어본 것도 카페 같은 곳에서 배경음악으로 틀어주는 것 아니면 FM 라디오로 잠깐 들어본 게 전부인 상태였다.
이렇게 시작하게 되었는데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리허설 촬영 때면 솔직히 말해 매번 미치도록 떨렸다. 솔로 연주 소리만 가득한 홀 안에서 심하게 요동치는 내 심장 소리가 들릴까 걱정되고, 이따금 연주자랑 눈이 마주치면 내 셔터 소리를 거슬려하지나 않을까 걱정되어 새가슴이 되었다. 음악을 잘 모르니 어느 순간에 셔터를 눌러야 하나 싶은 고민과 중압감에 잔뜩 사로잡혔고, 한동안은 동물적 감각에 의존해야 했다. 그러다가 점차 요령과 눈치가 생겼고 심리적으로도 안정을 찾아서 연주가 고양되는 순간에 연사 촬영으로 빠른 포착을 하며, 조용한 파트에선 숨죽이며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점차 객석에서 무대 위로 슬금슬금 올라가는 행동도 시작했다. 잘 찍고 싶은 욕심이 점점 커져갔다. 서툰 가운데서도 열심히 촬영하다보니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으나 그래도 울렁증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답은 하나였다. 너무 많이 생각할 필요 없고, 한 번에 하나씩 알아가자고 스스로 되뇌었다. 연주자들은 무대 위 긴장감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긴장감을 잘 이겨내야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법이고, 내게도 이건 절박한 과제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당시의 긴장감은 심장이 터지지 않은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한동안 필름으로 촬영하다가 2004~5년을 기점으로 카메라 시장의 판도가 디지털 카메라로 완전히 넘어가면서 회사에서 캐논 20D 카메라를 사주었다. 필름으로 졸업한 사진과 출신이라 어도비 사진 편집 프로그램에 디지털카메라를 익히는데 많이 낯설었다. 클래식 음악도 처음인데 디지털 카메라도 처음이라 살짝 이중고였다. 하지만 점차 새로움, 처음이 주는 묘한 떨림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만났을 때의 환상적인 쾌감에 맛을 들이게 되었다.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선물한 니콘 렌즈 모양의 텀블러. 사진/ 구본숙
그렇게 지내다가 2000년대 어느 해인가 니콘 렌즈 모양 텀블러(tumbler)를 손열음 피아니스트에게서 선물받았다. 공연 당일 리허설 때 무대 뒤로 갔더니 손열음이 ‘이게 보여서 작가님 생각이 나서 샀다’고 웃으며 주는데, 속으로 당황하면서도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텀블러도 마음에 들었지만, 손열음은 선물 때문에 비로소 기억나는 연주자가 아니라 내게 클래식을 알게 해준 첫 연주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손열음 피아니스트는 정상급 스타였다. 나는 그녀를 통해 클래식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피아노곡을 끝까지 들어보기 시작했다. 2005년 제1회 K음악인상 수상자가 되면서 접할 기회는 더 많아졌고, 당연히 천재 피아니스트에게 관심이 증폭되어 갔다.
당시 연주자는 19세였고, 낯을 많이 가리며 사진 찍히기를 무척 싫어하는 소녀였다. 지금이야 경험이 많으니 사진 울렁증 따위는 없을 거라고 짐작하지만…. 어쨌든 카메라 부속 장비 스피드 라이트(인공 광원 플래시) 상단의 접었다 폈다 하는 부분에 손열음 사인을 받아 훈장처럼 자랑하며 다녔다. 정상급 피아니스트의 자부심을 이입시킨다고나 할까. 이렇게 그녀의 사진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더 잘 찍고 싶은 욕망도 생기기 시작했으나 지금 보면 어색한 컷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연습이 최고의 결과를 낸다고 하지 않는가. 점차로 원하는 사진, 나만의 느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무대 위 연주자에겐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연주를 하면서 나오는 최고의 표정, 떨림, 숨막히는 여백의 시간. 그런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또한 음악을 하는 ‘인간’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래서 오랜 시간 관찰하는 습관도 생기기도 했다. 불필요한 것은 버리고, 조명 변화 및 노출도 다르게 다양한 사진을 시도하기도 했다. 인물사진의 거장 유서프 카쉬(Yousuf Karsh)가 찍은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의 첼로 켜는 뒷모습,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vsky)의 사진처럼 나도 기억에 남는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음악가들을 촬영한 사진을 주의 깊게 보며 정해진 시간 내에 피사체의 본질을 포착하는 감각을 키우고자 노력했고, 그 많은 테스트에 손열음 피아니스트가 시발점이 되었다. 그래서 늘 고맙고 기억할 수밖에 없는 연주자이다.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또 하나의 추억을 이 자리를 빌어 말해본다. 2010년 월간지에 우리 둘의 투샷 사진과 글이 나간 적이 있다. 기사 말미에 적힌 글이 마음에 들어 인용해본다.
“…한 명은 피아노, 한 명은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지만, 결국 그들은 예술을 말하고 있다.” ⓒ sceneCLUB Media앞으로도 손열음이 계속 최고의 예술가로서 나아가길 응원하며…. 우리의 예술을 위하여!
※글, 사진은 연주자의 허락하에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