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예술인에게도 별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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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헌 문화부장신문 만드는 게 직업인지라 책상에 놓인 따끈따끈한 조간신문을 훑어보는 것으로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 차곡차곡 놓인 ‘두툼’한 신문들 사이로 ‘얇은’ 주황색 신문이 하나 끼어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함께 세계 최고 경제지로 꼽히는 신문이다. FT를 구독한 건 1년여 전 문화부를 맡은 직후부터다. “경제신문 문화면을 만들 때 참고할 만하다”는 조언에 정작 경제 관련 부서에서 일할 때는 곁눈질로만 봤던 FT를 문화부에 와서야 읽게 됐다.
문화면에 힘주는 FT
가장 인상적인 건 ‘선택과 집중’이다. FT(아시아판 기준)는 18~20면밖에 안 된다. 한국 주요 신문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나마 전면 광고와 시장 지표 등이 담긴 ‘마켓 데이터’를 뺀 뉴스 페이지는 14~15면뿐이다. 이 작은 지면에 영국을 넘어 전 세계 정치·경제·산업 뉴스를 실어야 하니 선택과 집중 외엔 답이 없다.그래서 의외인 게 문화면의 ‘존재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릴 때도, 그 나라 왕(엘리자베스 2세)이 서거했을 때도 문화면은 언제나 ‘선택’됐다. FT는 1주일에 두 개 정도 발행하는 섹션 중 하나를 문화예술에 내줄 정도로 문화 뉴스에 ‘집중’한다. FT 독자에게 문화 뉴스가 경제 뉴스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큰 사건이 터지면 문화면을 쪼그라뜨리는 한국 언론과는 영 다른 모습이다.
쓰는 대상도, 쓰는 방식도 한국과는 딴판이다. 일단 클래식 미술 책 등 순수문화 위주다. 대중문화는 잘 다루지 않는다. 기사 형식은 대부분 리뷰다. ‘이런저런 공연이 열린다’는 예고 기사나 ‘많이 와서 봐달라’는 홍보성 인터뷰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기자 또는 평론가가 직접 봤더니 ‘괜찮더라’ ‘별로더라’는 내용이다. 별점도 단다. 냉정하기 짝이 없다. 세계 최고 발레단 중 하나인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별을 2개(5개 만점)를 줄 정도니, 말 다했다.
리뷰 있어야 예술 관심 커져
해당 예술인이나 기획사 입장에선 죽을 맛이겠지만, 지난 공연 평을 듣고 싶은 독자들이나 향후 어떤 공연을 고를지 고민하는 애호가들에겐 이런 선물이 또 없다. 리뷰 중심으로 문화면을 꾸리는 건 WSJ도 마찬가지다. 문화면을 설명하는 ‘문패’가 평일엔 ‘아츠 인 리뷰’, 주말엔 아무런 수식어 없이 그냥 ‘리뷰’다.따지고 보면 리뷰에서 자유로운 공인은 없다. 정치인, 고위 관료부터 대기업 오너와 스포츠맨까지 정통 언론은 물론 유튜버들도 매일같이 평론한다. 사람들은 국정감사에서 헛발질한 A의원을 비판한 리뷰 기사를 안주 삼아 소주를 들이켜고, 전날 경기에서 맹활약한 손흥민에게 영국 매체들이 평점 9점을 준 것에 환호한다.
자기 이름을 내걸고 티켓이나 작품을 판매하는 예술인이 평가 대상에서 빠져 있는 건 뭔가 이상한 측면이 있다. 다른 모든 분야가 다 그렇듯이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져야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그 분야 사람들의 실력도 좋아진다.
이제 예술이 그럴 차례다. 한국경제신문은 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arte.co.kr)를 통해 그동안 한국 언론이 잘 다루지 않던 공연·전시·영화·책 리뷰를 매일 여러 개 싣고 있다. 지금 확인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