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쏜 건 누구인가" 엇갈린 진술…대전 은행강도살인 재판

'무기징역-징역 20년' 두 피고인 치열한 공방, 오늘 항소심 시작
22년 전인 2001년 12월 21일 오전 10시.
대전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지하 주차장에서 건물 밖으로 나오던 현금 수송차 앞을 한 승용차가 가로막았다. 승용차에서 뛰어 내린 남자 2명은 순식간에 수송차를 덮쳤고, 이 과정에서 총성이 들렸다.

피를 흘려 쓰러진 사람은 이 은행 출납과장 김모(45)씨였다.

김씨는 사망했고, 범인들은 3억원이 든 가방을 빼앗아 달아났다. 경찰은 총력 수사를 벌였지만 강도살인범들은 잡히지 않았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고 사건은 장기미제로 남겨졌다.

그러나 이뤘다고 생각한 완전범죄의 꿈은 사건 발생 21년(7천553일) 만에 허망하게 깨졌다. 범행에 사용된 차 안에서 발견된 마스크와 손수건의 유전자 정보(DNA)가 충북지역 불법 게임장에서 나온 DNA와 정확히 일치했던 것. 경찰은 지난해 8월 25일 이승만(53)과 이정학(52)을 강도살인 등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이 사용한 권총은 범행 두 달 전인 10월 15일 0시께 대덕구 송촌동 일대에서 도보 순찰 중이던 경찰관을 차로 들이받은 뒤 빼앗은 것이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월 17일 "병역을 마치지 않아 총기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이정학과 달리 이승만은 수색대대 군 복무를 마쳐 총기 사용이 익숙하고 실탄 사격 경험도 풍부했던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승만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정학은 이승만의 지시에 따라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한 점 등이 감안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진술이 달랐다.

재판 내내 이승만은 권총을 쏜 것은 자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승만은 특히 1심 선고 공판이 열리기 나흘 전인 2월 13일 전북경찰청에 돌연 '전주 백선기 경사 살해·권총 탈취사건의 진범은 이정학이며, 이정학으로부터 권총을 건네받아 숨겨뒀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백 경사는 2002년 9월 20일 0시 50분께 파출소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동료 경찰관에 의해 발견됐다.

그가 허리에 차고 있던 실탄 4발과 공포탄 1발이 장전된 38구경 권총도 함께 사라졌다.

경찰은 이승만이 지목한 울산시 한 여관방의 천장에서 백 경사의 권총을 찾았다.

함께 사라진 실탄 4발과 공포탄 1발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전북지역 장기 미제로 남아있었지만, 이승만의 편지로 수사에 급물살을 탔다.

전북경찰청 장기미제사건팀은 이정학을 유력 용의자로 보고 수사 중이다.

이승만의 제보를 두고 이정학에 대한 배신감이 작용했거나, 혹은 앞으로 진행될 항소심에서 유리한 국면을 차지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승만은 1심 재판 과정에서 "이정학은 좀 간사하다고 해야 하나.

얼마나 살고 싶으면 저럴까 피눈물이 난다"면서 "나는 3대 1로 붙어도 제압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총을 쏠 필요가 없다"며 살해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자신이 총을 쏘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위해 또다른 장기 미제 사건을 자백하기도 했다.

이승만은 2003년 1월 22일 대전 중구 은행동 쇼핑몰 지하 주차장에서 현금 4억7천여만원이 실려있던 현금수송차량 절도 범행 역시 자신이 저질렀다면서 "제가 그때 했던 (현금 수송차 절도) 범행처럼 '우리는 돈이 목적이니까 최대한 사람을 다치게 하지 말자'고 이정학한테 얘기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두 명의 강도살인 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항소심이 10일 시작된다.

대전고법 형사1부(송석봉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강도살인 등 혐의로 구속기소 돼 1심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이승만(53)과 이정학(52)의 항소심 첫 공판을 연다.

이승만이 일관되게 권총을 쏘지 않았다고 부인해온 만큼, 2심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총을 쏜 것은 누구인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