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상환하세요" 증권사 추심에…투자자들 "미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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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증권발 무더기 하한가 사태SG증권발 무더기 하한가 사태가 투자자와 증권사 간의 소송전으로 비화할 전망이다.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막대한 빚을 이유로 채권 추심을 미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증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 중이다.
투자자-증권사 간 소송전 비화
증권사 "빚 면제, 검토 안 해"
1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태에 연관된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를 중개한 증권사들은 투자자들을 상대로 본격적인 추심에 들어갔다.이번 사태로 4억원가량의 추심을 받고 있는 A씨는 자택을 4일 가압류 당했다. A씨는 "B증권사가 변제계획서 제출을 요구하길래 답을 안했더니 다음날 집을 가압류 당했다"고 했다.
투자자 C씨도 D증권사로부터 9일 자택을 가압류 당했다. C씨는 "D증권사가 처음엔 1년 내로 전체 추심액의 70%를 상환하라고 하더니, 입장을 바꿔 90일 내로 갚으라고 요구했다"며 "현재 집이 가압류 사건 대기 접수 중이라는 안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CFD는 투자자의 증거금을 넘는 손실에 대해 증권사가 그 책임을 떠안도록 한다. 대신 증권사들에게는 투자자에게 구상권 청구가 가능하다. 투자자는 담보가 없는 레버리지 투자를 했기 때문에 빌린 돈과 그에 대한 이자를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
증권사들 "미수채권 추심, 안 하면 배임"
증권사들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SG증권발 무더기 하한가 사태로 인한 미수채권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라덕연 H투자컨설팅업체 대표 등을 검찰에 고소한 투자자 66명이 주장 중인 피해금은 총 1350억원 수준이다. 피해자 대리인에 따르면 추가로 고소를 진행 중인 투자자만 약 150여 명에 달한다.증권사로선 아무리 반대 매매를 해 자금을 거둬들여도, 투자자에게 빌려준 금액을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임희연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수채권 증가 시 충당금 적립이 불가피하다"며 "대부분 증권사들의 2분기 실적이 1분기 대비 크게 부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따라서 증권사들은 당분간 법적인 절차에 따라 추심 절차를 그대로 밟겠다는 입장이다. 추심 절차를 시작한 증권사의 한 임원은 "미수채권을 그대로 두는 것도 배임"이라며 "미수채권을 적극적으로 회수하는 것이 증권사의 의무"라고 말했다.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지금 단계에서는 최대한 회수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라며 "추심을 미룬다거나 면제하는 등에 대한 검토는 없다"고 밝혔다.
일부 증권사는 분할 상환도 권장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개별 투자자마다 변제 의사를 확인하고, 각자 처한 상황에 따른 분할 상환 등을 안내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만일 전화를 받지 않는 등 변제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면, 연체 이자나 신용 등급 하락, 자산 압류 등의 불이익이 있다고 안내 중"이라고 말했다.
투자자 대리인 "법적 문제 따져봐야…변제 미뤄달라"
투자자들은 추심을 미뤄달라는 입장이다. SG증권발 무더기 하한가 사태 투자자를 대변 중인 법무법인 대건은 "법적인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당장 미수채권 추심에 들어가 신용 불이익, 가압류 등 조치를 내리는 것은 가혹하다"고 주장했다.공형진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투자자 대부분이 선의의 피해자"라며 "증권사와 투자자 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데, 설명의무 위반 등 법적인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변제 의무부터 지우려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공 변호사는 투자자들 대부분이 CFD 매매에 대한 이해 없이 투자에 참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 중 이번 사태로 가장 큰 손실을 입은 금액은 400억원에 달한다. 이 투자자는 3년 전 2억원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손실이 400억원에 이를 만한 투자였는지는 몰랐다고 주장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법적으로 미수채권 추심을 미루거나 변제받을 근거는 없다. 법무법인 대건 측은 11일 열리는 국회 정무위원회 등에서 이 사안을 논의하거나, 금융위원회의 권고 등의 조치를 요구 중이다.일부 투자자들은 지난 4일 금융위에 증권사의 채권 추심을 유예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한 바 있다. 당국은 고위험 투자자에 대한 지원이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추심 여부에 대해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배성재 기자 sh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