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부채한도 협상 또 실패…뿔난 월가 "한도 없애라"

정부·공화·민주당 교착 지속

"한도 상향이 정쟁 도구로 악용
불필요한 시장 불안 초래" 비판
바이든 "미해결땐 G7 불참" 강수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공화당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부채한도 상향을 위해 3개월 만에 만났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미국 정부는 이르면 다음달 1일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질 위기다. 시장의 불안감이 높아지자 월가와 학계 등에선 부채 상한 제도를 아예 폐지하라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9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공화당 매카시 하원의장과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민주당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 및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등 의회 지도부와 만나 1시간가량 부채한도 문제를 논의했으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합의 불발로 시장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주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디폴트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다음달 6일 만기인 미 국채 수익률이 연 4.85%에서 5.53%로 급등했다.미 국채 부도는 금융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어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채 부도에 이르지 않더라도 정부·지자체와 기업의 조달금리 상승과 공공 부문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 부채 상한 제도는 1939년 재정 건전성 등을 위해 도입됐다. 당시 450억달러 정도였던 한도는 이후 84년간 78차례 상향돼 현재 31조3810억달러에 이르렀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18차례나 한도를 상향했다.

부채한도를 높이려면 의회 승인이 필요한 탓에 잦은 다툼이 벌어지고, 불필요한 시장 불안을 일으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1년에도 공화당이 재정적자 감축을 요구하며 부채한도 상향을 거부해 국가 신용등급 강등 위기에 몰린 끝에 디폴트 시한 이틀 전 간신히 합의에 이르렀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공화당이 비합리적인 요구안을 들고 벼랑끝 전술을 구사한다”고 비난하며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부채 상한 제도가 위헌이라는 주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골드만삭스 등 월가 은행 관계자들로 구성된 재무부 차입자문위원회(TBAC)도 옐런 재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현재 (정부와 의회 간) 교착상태로 국채 디폴트에 대비한 자금을 확보해야 할 지경”이라며 “예산과 연계해 자동으로 부채한도를 높이는 방안을 도입하거나 부채 상한 제도의 완전 폐지를 논의할 때”라고 건의했다.

바이든 행정부와 공화당은 12일 다시 만나 논의를 이어가기로 하고, 향후 2주간 집중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 공화당은 부채한도 합의 전제조건으로 정부 지출 삭감 요구를 고수하고 있어 바이든 대통령이 ‘조건 없는 한도 상향’ 입장에서 물러날지 주목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오는 19~21일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불참할 수도 있다고 밝히면서 한·미·일 정상회의 무산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