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으로 다시 세우는 하루

[arte] 정기현의 탐나는 책

오카다 도시키 소설집
(알마,2017)
‘책임 편집’을 맡은 도서의 경우,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원고를 적어도 대여섯 번은 샅샅이 읽어 보게 된다. 그 몇 달 간의 과정 속에서 보아도 보아도 원고의 산뜻함이 닳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책이 내게 새로운 시점을 선물해 줄 때다. 오카다 도시키의 소설집 <비교적 낙관적인 케이스>가 그런 책이다.

새로운 시점은 곧 새로운 세상이 된다. 오카다 도시키의 소설집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1년여 전부터 내가 마주하고 있는 새 세상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보고 싶다. 나는 1년 전부터 '도시 양봉'을 배워, 지난달부터는 산에서 벌들을 직접 키우기 시작하였다.

중학생 때 친구네 집 앞 복도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그만 계단 손잡이에 앉아 있던 벌에게 손바닥을 쏘이고 말았다. 당시 한동안 고생했던 기억 때문에 벌은 늘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1년 동안 쌓아올린 시간 앞에 두려움은 별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제는 나의 두려움보다는 벌들의 안부를 먼저 살피는 초보 양봉인으로 거듭났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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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양봉’할 벌들을 만나기 바로 전 주에는 마음을 다지자는 핑계로 강화도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나와 나의 양봉 파트너는 고려궁지에 들어섰다. 고려궁지는 고려시대 최우 정권이 대몽 항쟁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뒤편에는 조선시대 외규장각이 세워져 있어 고려조와 조선조의 흔적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재미있는 유적지다.

우리는 고려궁지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진동음을 포착하였다. 뭐야, 벌떼잖아! 주위를 둘러보니 고려궁지 앞뜰 단풍나무의 꽃봉오리마다 바삐 움직이는 꿀벌들이 가득했다. 이제는 청각만으로 벌들의 흔적을 포착하는 프로 양봉인이 된 걸까? 뜻밖의 벌떼를 기분 좋게 지나친 우리는 외규장각을 거쳐 그 뒤뜰에 임시로 방치된 것처럼 보이는 여덟 개의 석상에서 꿀벌 한 마리를 다시 마주쳤다. 외규장각 뒤뜰 석상 이마 위에서 쉬고 있는 한 마리의 벌은 마치 고려궁지 벌 떼의 소란으로부터, 어쩌면 전쟁의 소란으로부터 벗어나 홀로 꼿꼿이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고려궁지는 우리에게 벌들의 이야기로 기억되었다. 양봉인으로서의 여행이 아니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이야기다.

할머니가 어제 받은 포인트 카드에 추가로 스탬프를 찍어주었습니다. 계산대 옆 등나무 바구니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도록 식빵 귀퉁이를 담아놓았는데, 저는 그걸 한 봉지 집어 가게를 나갔습니다. 결제하는 위치에서 보이던 유리창 너머의 풍경 밖으로 내가 사라져 갔고, 그 후 다음 손님이 올 때까지는 잠시 짬이 생겼습니다. 할머니가 웃는 얼굴을 내려놓고, 하품을 했습니다.
-<비교적 낙관적인 케이스>에서나의 강화도 여행이 초보 양봉인 시점에서의 여행이었다면, 오카다 도시키 소설집의 표제작 <비교적 낙관적인 케이스>는 빵 애호가 시점에서 일상을 그려낸다. 소설은 마을에 ‘코티디앙’이라는 새로운 빵집이 생기면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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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화자는 평소 애인과 함께 맛있는 빵을 먹으며 아침을 시작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화자는 ‘코티디앙’의 등장으로 맛있는 빵이라는 조건은 갖춰졌으니 이제 애인을 찾으면 되겠다고 생각할 만큼 빵을 사랑하여, 빵을 중심으로 일상을 재구축한다. 마침내 ‘아침 빵’ 생활을 함께해 줄 애인을 만나는 데 성공한 화자는 규칙적으로 코티디앙을 찾으며 행복한 빵 생활을 이어간다. 밀가루 값이 올라 빵 생활에 타격을 받기 전까지는.

빵으로부터 삶을 다시 만들어 간다는 소설의 중심 줄기 역시 이 소설이 지닌 닳지 않는 산뜻함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소설에는 진정한 빵 애호가가 아니라면 포착할 수 없는 장면이 두 군데 등장한다.첫 번째는 앞서 인용한, 화자가 처음 코티디앙을 방문하여 빵을 구입한 뒤 가게로부터 멀어져 가는 자신의 모습과 ‘나’가 가게를 빠져나간 뒤 가게 주인 할머니가 하품하는 모습을 묘사한 장면이다. 1인칭 시점으로 착실히 진행되다가 갑자기 훅 넓어진 시선으로 나의 뒷모습과 가게 주인의 혼자 있을 때의 얼굴을 포착한 장면이 왜 이렇게 자유롭게 느껴지는지. 아무리 무거운 걱정도 단숨에 작은 뒷모습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듯한 힘까지 전해진다.

두 번째는 화자만큼 코티디앙을 사랑하게 된 화자의 애인이 밀가루 값이 급등했으니 코티디앙 방문 횟수를 줄이자는 화자의 요청을 무시하고 몰래 코티디앙 빵을 구입해 해안에서 홀로 빵을 먹는 장면이다. 여느 날과 같이 혼자 크로켓 빵을 사 들고 해안에서 그 맛을 즐기려던 순간, 솔개 한 마리가 크로켓 빵을 낚아채며 그의 손등에 상흔을 남긴다. 여기서 다시 시점이 훅 넓어지며 상처의 모양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솔개보다 훨씬 높은 상공을 나는 제트기에서는 유조선이 해면에 남긴 항적이 훤히 내려다 보였습니다. 그 항적의 모양은 그의 손등에 지금 막 생긴 상처와 닮았습니다.
-<비교적 낙관적인 케이스>에서코티디앙 빵을 먹지 못하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욕망은 그에게 절대적이지만, 위의 단 두 문장만으로 그 욕망 또한 한없이 귀여워져 버린다. 빵을 사랑하는 마음에 숱한 우여곡절이 있지 않고서는 획득할 수 없는 커다란 시점이다. 어쩌면 오카다 도시키도 빵 혹은 빵과 같은 대상으로 일상을 재구축해 본 경험이 있고, 그 대상으로 인해 일상이 뒤흔들린 우여곡절을 겪었던 게 아닐까?

일로 만난 작품이 아닌데도 <비교적 낙관적인 케이스>를 네 번이나 거뜬히 읽게 만든 소설의 탁월함이 이 장면들에 담겨 있다. 알고도 꼼짝없이 감동하고 마는 소설의 자유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