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는 탄소배출권 시장…활성화 위한 8가지 과제

탄소배출권 시장이 2015년에 개장한 이래로 가격 불안정이 이어지면서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10월부터 시행되는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국내 탄소배출권시장 시장의 재편을 요구하고 있다. 탄소배출권 시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한경ESG] 이슈 브리핑

2015년 1월 12일 개장한 국내 탄소배출권시장은 2023년 4월 28일 현재 거래일 수 기준으로 2045일째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개장 이후 수급 불안 요인이 배출권 가격 급등락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국내 탄소배출권시장에 대해 제프리 쇼트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 연구원은 “한국의 배출권거래제도는 뼈대만 갖췄을 뿐 실제로 기업들이 탄소감축 이행 방안을 도입·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도록 장려하거나 압박하지 못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시장구조는 완전히 바뀌었다. 코로나19 이전은 탄소배출권 수요 우위의 가격 급등세를 보인 반면, 이후에는 공급 우위의 가격 급락세를 보이면서 할당배출권(KAU22년물) 가격은 연이어 연중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투자자별 매매 패턴의 변화도 있었다. 팬데믹 이전에는 산업 부문의 매도를 전환(발전) 부문에서 소화하는 매매 행태를 보였으나, 이후에는 산업 부문의 매도를 시장 조성자(금융사)들이 매입했다. 전환 부문의 매입은 경매시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어 현물시장과 경매시장으로 이원화되는 움직임도 관찰되고 있다. 하드웨어만 갖춘 배출권시장

올해 10월부터는 유럽의 대표적 환경규제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시행된다. 이 제도의 시행은 국내 탄소배출권시장에 대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변화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2015년 1월 개장 이후 국내 탄소배출권시장은 ‘하드웨어적 인프라’는 완비되었으나 ‘시장다움’의 소프트웨어는 부족한 상황이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시장 참여자의 제한과 무위험 매도차익거래다. 시장 참여자의 제한은 시장다움을 훼손하는 대표적 요인이며, 시장 실패 요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시장 조성자를 7개 금융기관으로 확대했다. 시장 개설 10년 차에 접어들어서야 시장 조성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볼 부분이다. 시장조성자제도는 시장 개설 초기에 매수·매도 호가 갭 축소 및 유동성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한시적(1년 이내)으로 운영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무위험 차익거래도 마찬가지다. 시장 운영에서 이러한 거래 형태가 가능하다는 것은 시장제도의 문제점을 증명하는 것과 같다. 국내 탄소배출권시장에서는 현물시장과 경매시장 간 가격 차이로 매도차익거래가 가능하다. 배출권 잉여 상태에서 경매시장에서 낙찰가격은 현물시장 가격보다 낮게 결정된다. 따라서 경매시장에서 매입 후 현물시장에서 매도하는 차익거래가 가능하다. 효율적 시장 운영을 위해서는 이러한 무위험 차익거래가 없도록 해야 한다.

국내 탄소배출권시장의 취약한 부문인 소프트웨어적 측면을 중심으로 ‘글로벌 스탠더드 부합’, ‘시장 메커니즘 충실’, ‘정책 및 제도 불확실성 제거’ 등을 위해 필요한 8가지 개선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경매제도 개선탄소배출권 경매시장은 현물시장의 수급 상황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다. 응찰(수요)이 입찰(공급)보다 큰 경우 현물가격보다 경매가격이 높게 형성되면서 향후 가격상승에 대한 전망을 하게 된다. 반대로 입찰(공급)이 응찰(수요)보다 큰 경우 초과공급으로 현물가격보다 경매가격이 낮게 형성되면서 가격하락을 전망하게 된다.

경매시장제도 중 최고 응찰가격과 최저 응찰가격에 대한 제한이 없다는 점과 낙찰 하한가 계산 방식을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은 가격 발견 기능보다는 오히려 경매 낙찰가격의 불확실성만 높이고 있다. 해결책으로는 현물시장과 동일하게 종가 대비 ±10.0%로 상하한 가격을 제한해야 하고, 경매시장 참여자 확대를 위해 입찰 수량의 15~30%인 낙찰 수량 한도도 마련해야 한다 .

2. 시장 안정화 조치 개선

탄소배출권시장은 과거 배출량 수준에 기반을 둔 그랜드 파더링(grandfathering, GF) 할당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 결과 탄소배출권시장은 태생적으로 공급 우위인 시장이다. 할당량은 사전에 과거 배출량 기준으로 정해지는 값인 반면, 인증량은 사후에 확정되는 가변적인 값이다. 저성장과 경기침제 국면은 계획 기간을 거치면서 과잉 할당 결과를 낳게 된다.

탄소배출권시장의 성패 여부는 공급 물량 통제와 직결된다. 유럽 탄소배출권시장이 대표적 예로, 리먼 사태와 유럽 재정 위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과잉 할당된 배출권을 관리하고 있다. 유럽 탄소배출권 시장 안정화 조치의 핵심은 물량 통제를 이용한 가격 관리다. 적정한 유통 물량 기준을 산정해 초과 시 경매 물량을 줄이고, 부족 시 늘리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배출권 가격을 상승시켜 온실가스 감축 프로젝트를 독려하고 있다.

3. 정보 비대칭성 개선

정보 비대칭성은 시장 참여자 사이의 정보 격차를 일컫는다. 시장 운영과 관련한 정보는 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투명하고 시차 없이 즉각적으로 공개되어야 한다. 정책 당국이 탄소배출권시장과 관련한 정책, 제도, 정보에 대해 정보 비대칭성을 야기하는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자의적 재량보다는 준칙에 입각해 운영되는 흐름이 필요하다.

사전적으로 정립된 준칙 없이 정책 당국 재량에 의한 부분은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정보의 비대칭성을 확대한다. 재량과 관련해 대표적인 것은 시장 안정화 조치(현저한 부족), 시장 조성자 의무 이행 평가 기준(시장 변동성 확대 기간 중 변동성의 정의), 유상 경매시장의 낙찰 하한가 산식 미공개, 장외거래 가격 및 거래량 미공개 등을 꼽을 수 있다.

4. 개인투자자 시장 참여 허용

제3자 시장 참여에서 개인투자자는 현물시장뿐 아니라 향후 파생상품시장에서도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반 개인투자자의 투자 방식은 크게 변화하고 있는데,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직접투자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직접투자를 선호하는 비중은 83.0%를 차지한다.

최근 시장에서 회자되고 있는 간접투자상품(ETF, ETN 등)을 이용한 제3자의 시장 참여 방식은 지양해야 하며, 간접투자 방식을 통한 현물시장 활성화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유럽 탄소배출권시장의 경우 할당 대상 업체, 기관투자자, 개인투자자, 헤지펀드, 글로벌 투자은행, 법무법인, 컨설팅업체 등 다양한 주체가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제3자의 시장 참여는 개인투자자의 직접투자 방식의 참여가 핵심이 되어야 하고, 시장 참여자 제한을 조속히 없애야 한다.
5. 장내 탄소배출권 파생상품 도입

특정 상품이 파생상품으로 상장되기 위해서는 기초자산의 표준화, 높은 가격 변동성, 풍부한 유동성 등을 만족시켜야 한다. 탄소배출권시장의 경우 거래되는 기초자산은 톤 단위로 거래됨에 따라 표준화 기준은 만족시키고 있고, 연평균 장기 변동성 또한 45.9%에 달하는 높은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그러나 저유동성 부문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시장조성자를 통한 유동성 보강은 단기적 처방이므로 실질적 유동성 개선과 보강을 위해서는 개인투자자의 시장 참여와 장내거래 의무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제4차 계획 기간 중 유상 할당 비중이 대폭 증가할 경우 위험관리의 필요성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연성 메커니즘 중 이월에 대한 리스크(가격하락 및 배출권 처분)는 선물 매도 포지션으로 제거하고, 차입에 대한 리스크(가격상승 및 배출권 확보)는 선물 매입 포지션으로 제거할 수 있도록 탄소배출권 선물시장의 조기 개설이 필요하다.

6. 장내거래 의무화

국내 탄소배출권시장은 개장 이후 누적 기준으로 장외거래 비중 56.1%, 유상 경매 비중 10.8%, 장내거래 비중 33.2%의 구성 비율을 보이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이 장외거래를 선호하는 이유는 대량 거래가 단일 가격에 가능하다는 점과 매매 비용이 저렴하다는 점, 매매거래 정보가 미공개된다는 점에서 선호하지만, 현물시장의 유동성 보강 및 투명한 가격결정 제고를 위해 장내거래를 의무화해야 한다.

특히 무상으로 할당받은 배출권에 대해서는 장내거래 의무화 명분이 충분해 보인다. 더 나아가 제3차 계획 기간에 도입 예정인 장내 파생상품 도입에 앞서 반드시 현물시장 가격의 투명성 확보와 함께 원하는 가격에 원하는 수량을 매매할 있도록 유동성 보강이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한 단기적이고 최적의 해법은 무상 할당 배출권에 대한 장내거래 의무화다.

7. 유상 할당 강화

제1차 계획 기간 100% 무상 할당 이후 제2차 계획 기간에는 무상 할당 97%(유상 할당 3%), 제3차 계획 기간에는 90%(유상 할당 10%) 비중으로 유상 할당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유상 할당 비율을 높여가는 이유는 온실가스 감축 투자를 유인하고, 더 나아가 비용 효율적인 감축 프로젝트 개발에 있다.

최근 유럽 탄소배출권 가격이 톤당 100유로에 육박하는 고공행진 배경에는 유상 할당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과 EU 지역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 조정, 배출권 유통 물량 축소가 있다. 국내 탄소배출권시장도 제4차 계획 기간에는 경기 펀더멘털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제표준에 적합하도록 유상 할당 비중을 높여야 하고, 동시에 이에 대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상 할당 업종 대상으로 탄소차액계약제도(Carbon Contracts for Differences, CCfDs)를 도입해야 한다.

8. 이월제한제도 변경

탄소배출권시장에서 유연성 메커니즘은 이월제도, 차입제도, 상쇄제도, 조기 감축 실적으로 구성된다. 탄소배출권시장의 수급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제도들로, 매우 신중하게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유럽 탄소배출권시장은 개장 초반, 시장 논리에 입각해 무상 할당의 경우 이월을 불허했다. 그 결과 유럽 탄소배출권 가격은 톤당 0.03유로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월 금지의 배경은 무상 할당 배출권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유상 할당 비율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유상 할당과 이월 허용은 비례적 관점에서 운영되어야 한다. 제4차 계획 기간부터는 유상 할당 비율이 10%라면 잉여분에 대해 10% 이월을 허용하고, 만약 유상 할당이 100%라면 잉여량 100%를 이월할 수 있도록 유상 할당 비율과 연동해 이월 비율을 허용해야 한다.

앞서 말한 8가지 개선 과제는 상호 연계해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8대 과제 중 핵심은 ‘개인투자자의 시장 참여 조기 허용’과 ‘탄소배출권선물 조기 도입’이다.

특히 탄소배출권 선물을 도입하기 앞서 경매시장 개선, 시장 안정화 조치 개선, 정보 비대칭성 개선, 개인투자자 시장 참여 허용, 장내거래 의무화, 유상 할당 강화, 이월제한제도 개선 등 7대 과제가 먼저 개선, 보강되어야 탄소배출권 선물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다.

향후 개인투자자의 시장 참여를 불허한다면 탄소배출권 현물·선물시장 활성화는 절대 기대할 수 없고, 국내 탄소배출권시장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폐단과 피해는 경제 주체 모두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다.유소년기인 제1차, 제2차 계획 기간을 거친 후 2021년부터 장년기인 제3차 계획 기간이 운영되고 있는 시점이다. 현재 국내 탄소배출권시장은 백척간두에 서 있다. 국내 탄소배출권시장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태선 NAMU En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