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미술관에 들어갔다…자세히 살피니 보인다, 오래 봐야 스며든다, 예술이 그렇다
입력
수정
지면A21
리움 '밤의 미술관' 찾은 회원들지난 10일 오후 6시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로비. 폐장시간이 되자 관람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마우리치오 카텔란, 위(WE)’와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은 최고의 인기를 자랑한다. 티켓을 얻기 위한 ‘온라인 클릭 경쟁’이 뜨겁다. 쾌적한 관람을 위해 입장 인원을 제한하고 있지만 1년 365일 발 디딜 틈이 없다.
20분 줄서야 보는 카텔란 작품
마음껏 사진찍고 둘러보며 즐겨
백자도 허리 숙여 찬찬히 감상
큐레이터의 수준급 해설은 덤
인파가 사라진 공간에서는 작은 소리들까지 울려 퍼졌다. 적막감마저 감도는 텅 빈 공간에 20여 명의 ‘특별한 손님’이 자리를 함께했다. 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 회원에게 전시 해설과 자유 관람 시간을 제공하는 ‘밤의 미술관’ 프로그램 참석자들이다. 아르떼 홈페이지 출범 이벤트에 당첨된 이들 관람객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호사를 누렸다.리움미술관 ‘스타급 큐레이터’들의 전시 해설을 들으며 한적하고 여유롭게 감상을 즐겼다. 카텔란전 해설은 감각적인 큐레이션으로 팬덤을 구축한 추성아가, 백자전 해설은 전시 기획자이자 지난 8일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부인 기시다 유코 여사가 방문했을 때 동행한 이준광이 등판했다.
“난생처음 겪는 특별한 전시”
로비에서 라디오 수신기를 챙긴 관객은 큐레이터들의 안내를 받아 각자의 전시장에 들어섰다. 평소에는 20분 이상 줄을 서야 제대로 된 감상 기회가 찾아왔던 카텔란의 작품 ‘시스티나 성당’도 한걸음에 볼 수 있었다. 작품 하나를 오랜 시간 자세히 뜯어보며 구석구석을 카메라로 촬영하는 관객도 있었다. 평소에서는 다른 관람객의 눈치를 보느라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관람객은 그때그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을 자유롭게 던졌다. 카텔란이 바나나를 테이프로 벽에 붙인 개념미술 작품 ‘코미디언’ 앞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바나나를 새 걸로 교체하고 나면 떼낸 바나나는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한 관객의 질문에 추 큐레이터가 “떼낸 바나나는 아까우니까 직원들이 먹어버린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이날 전시 해설과 자유 관람은 30분 정도씩 이어졌다.관람객들은 호평 일색의 소감을 쏟아냈다. 전시를 관람한 임순영 씨는 “이렇게 호젓하게 전시를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어 너무 기쁘고 놀랍다”며 “해설 수준이 매우 높은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주혜린 씨는 “일전에 일반 관람으로 전시를 봤을 때와 차원이 다른 경험”이라며 “큐레이터 설명을 들으니 종합적으로 전시를 이해할 수 있었고, 남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인증샷을 찍을 수 있는 점도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이소연 씨는 “국내에서 열리는 전시는 빼놓지 않고 둘러보는데, 카텔란전은 예매가 너무 힘들어 이때까지 못 보고 있었다”며 “한국경제신문 지면에서 이벤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읽고 재빨리 신청했는데 평소 신문을 열심히 챙겨본 보람이 있다”고 했다.
조선백자 ‘아우라’에 연신 감탄
백자전 반응도 뜨거웠다. 관람객들은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이수연 씨는 “도자기에 대한 배경 지식이 많지 않았지만 심도 있게 전시를 즐기고 작품의 이모저모를 살펴볼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해설을 마친 이 큐레이터는 “관객들의 뜨거운 관람 열기 덕분에 손에 꼽을 만큼 즐거운 해설이었다”며 웃었다. 해설이 끝난 뒤 관객들은 큐레이터의 설명을 찬찬히 복기하며 처음부터 다시 전시를 돌아봤다.아르떼가 제공하는 ‘밤의 미술관’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서울시내 주요 미술관에서 계속된다. 오는 25일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행사가 대표적이다. 추첨을 통해 선정된 관객들은 국립현대미술관과 경복궁이 한눈에 들어오는 환상적인 야경을 감상한 뒤 도슨트와 함께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 전시를 감상하게 된다. 추후 다른 행사 일정은 아르떼 홈페이지에 실시간으로 공지될 예정이다.성수영/민지혜 기자, 사진=최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