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아침 시편] 물메기국 넘어가는 소리에 목이 메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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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S9
아버지의 빈 밥상
고두현정독도서관 회화나무
가지 끝에 까치집 하나
삼십 년 전에도 그랬지
남해 금산 보리암 아래
토담집 까치둥지
어머니는 일하러 가고
집에 남은 아버지 물메기국 끓이셨지
겨우내 몸 말린 메기들 꼬득꼬득 맛 좋지만
밍밍한 껍질이 싫어 오물오물 눈치 보다
그릇 아래 슬그머니 뱉어 놓곤 했는데
잠깐씩 한눈팔 때 감쪽같이 없어졌지얘야 어른 되면 껍질이 더 좋단다
맑은 물에 통무 한쪽
속 다 비치는 국그릇 헹구며
평생 겉돌다 온 메기 껍질처럼
몸보다 마음 더 불편했을 아버지
나무 아래 둥그렇게 앉은 밥상
간간이 숟가락 사이로 먼 바다 소리 왔다 가고
늦은 점심, 물메기국 넘어가는 소리에
목이 메기도 하던 그런 풍경이 있었네
해 질 녘까지 그 모습 지켜봤을
까치집 때문인가, 정독도서관 앞길에서
오래도록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여름 한낮.*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그날 정독도서관 앞 회화나무 아래에 한참 서 있었습니다. 수령 300년이 넘은 나무의 짙푸른 녹음과 가지 위에 초가집처럼 얹힌 까치둥지 때문이었을까요.
어릴 적 밥상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 5~6학년 무렵이었지요. 그때 우리 식구는 남해 금산 보리암 아래 토담집에 살았습니다. 집도 절도 없어서 오랫동안 절집에 얹혀살다가 계곡 옆에 작은 흙집을 마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죠.
마당 가 평상에 앉아 점심을 먹는데 키 큰 회화나무 가지 위의 까치집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밥상은 대부분 아버지가 차렸지요. 어머니는 몸이 좋지 않은 아버지를 대신해 절집이나 산 아랫마을로 일을 나가는 날이 많았습니다.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재산을 정리해서는 나름대로 뜻을 품고 북간도로 갔다가 꿈은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지요. 광복 이후 혼란기와 전쟁 통에 몸까지 상했습니다. 세상과의 싸움에서 번번이 참패하고, 힘이 다 빠진 상태로 낙향했으니 낙심과 좌절이 오죽 심했을까요. 아버지의 뒷모습에는 늘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묻어났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쉰이 다 되어서 얻은 늦둥이입니다. 여동생과 함께 네 식구가 절집에서 눈칫밥을 먹다가 어렵사리 토담집을 마련한 그 시절, 아버지는 가끔 물메기국을 끓여 우리 남매를 먹였지요.
물메기는 남해 특산물입니다. 겨우내 빨랫줄에 만국기처럼 걸어 말려두었다가 국을 끓여 먹었지요. 생김새는 볼품없었지만, 맛은 아주 좋았습니다. 하지만 국물에 풀려 흐물흐물해진 껍질은 밍밍해서 영 맛이 없었지요.
그날도 아버지가 물메기국을 끓였는데, 저는 맛있는 살만 살살 골라 먹고 껍질은 입안에서 오물거리다 눈치껏 밥그릇 밑에 슬쩍 뱉어 감춰놓았습니다. 아버지가 알면 야단맞을까 봐 짐짓 능청을 떨며 시야를 분산시키곤 했죠.
그런데 잠깐씩 한눈을 팔 때마다 물메기 껍질이 감쪽같이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오물거리던 입을 멈추고 아버지 표정을 조심스레 살펴봤지요. 아버지는 “야야, 어른이 되믄 껍질이 더 좋단다”라며 넌지시 먼 데를 보셨습니다.
그때 어렴풋이 보았지요. 아버지의 깊은 눈빛 사이로 어른거리던 쓸쓸함의 그늘을. 맑은 물에 통무를 썰어 넣고 마른 메기를 잘라 국을 끓이는 동안 아버지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요. 일 나간 어미 대신 아이들 밥상을 챙기는 아비의 마음. 평생 세상을 겉돌다 온 메기 껍질처럼 몸보다 마음 더 불편했을 아버지의 슬픔이 거기에 녹아 있었습니다.
그날 밥상 위를 둥그렇게 보듬던 바람은 여느 때보다 습기를 더 머금은 것 같았지요. 달그락거리는 숟가락 사이로 간간이 먼 바닷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습니다. 한결 고요해진 풍경 속에서 물메기국 넘어가는 소리는 더 크게 들렸지요. 그 애잔한 소리에 그만 목이 메고 말았습니다. 그날 그 풍경은 나이 들고 철이 난 뒤에도 쉽게 잊히지 않았지요.
그 모습을 지켜봤을 나무 위 까치집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까치둥지를 이고 선 정독도서관 회화나무 앞길을 오래도록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렸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회화나무 너머 하늘에서 지켜봤을 아버지가 저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나 주셨습니다. 어쩌면 아버지가 대신 받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그 선물이 바로 이 시 ‘아버지의 빈 밥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