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쪽으로는 가고 싶지 않아요"…이태원 상권 '역대 최악'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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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째 발걸음 '뚝' 이태원 상권"28년간 이곳에서 장사했는데 여전히 역대 최악으로 장사가 잘 안 돼요. 사고 직후 3개월 동안은 매출이 아예 없어서 가게 문을 닫았고요. 이제 겨우 50% 정도 회복했는데, 100%까지 올라오려면 언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수백명 사상자 낸 '10·29 참사' 여파
상품권·행사 개최 등 상권 회복 노력
이태원에서 수백명의 사상자가 나온 '10·29 참사'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상인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수심이 가득했다. 매출 추이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유지하면서 이태원 인근 자영업자들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사고 발생 지역인 이태원 1동 지역의 올해 2월 4주차 카드 매출액은 사고 발생 직전인 지난해 10월 4주차 대비 57.1%, 유동 인구는 29%가량 줄었다. 매출 타격을 견디지 못하고 가게를 포기한 이들도 여럿이다.시와 지역단체 등에서 '이태원 상권회복 상품권' 등을 내놓는 등 상권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방안을 내놨으나, 여전히 이곳 자영업자들은 어려움 호소하는 분위기다. 참사가 일어난 뒷골목 인근에서 술집을 운영 중인 사장 김모 씨(40)는 "여전히 (힘든 정도는) 참사 직후와 같고, 사람은 없다. 여기 주변 건물주들도 많이 바뀌었다"며 "몇개월 전만 해도 직원 20~30명을 데리고 일하던 한 술집 사장님은 직원들이 참사 트라우마 때문에 그만둔 탓에 가게를 아예 닫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곳에서 11년간 화장품 매장을 운영 중인 사장 황모 씨(65)도 "참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매출 회복이 전혀 안 돼서 힘들다"며 "가끔 들리시는 손님들께 물어보면 참사 여파 때문인지 전처럼 '이태원을 찾아도 즐길 분위기가 안 난다'고 하시더라. 지금 장사는 남는 게 없을 정도가 아니라 '빚내서 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참사 6개월째…'줄어든 발길' 지속돼
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119-3번지 일대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서 300명이 넘는 압사 사상자가 발생한 '대규모 참사'가 발생하면서 '이태원 상권의 몰락'이 본격화됐다. 참사 직후 이곳을 대표하던 맛집과 술집 등은 매출 급감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참사가 일어난 곳 인근은 평소 MZ(밀레니얼+Z) 세대들이 몰려 북적북적한 분위기를 자랑했지만, 12일 점심 시간대 방문한 매장은 손님이 없이 썰렁했다. 참사 골목 바로 옆 3층짜리 중대형 매장의 공실과, 클럽·라운지 바가 모인 참사 옆 골목 건물 3곳의 공실이 눈에 띄었다. 이태원 내에서 잘나가던 부지도 매물을 내놓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들 반응이다.
공인중개사 김모 씨는 "이태원은 관광지 특성을 띠고 있고, 나름대로 문화가 있어서 그걸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요즘엔 젊은 분들의 발걸음이 많이 뜸해졌다"며 "코로나19 이후로 매장들이 하나씩 다시 들어오려나 기대했지만, 바로 참사가 터진 여파로 여전히 매매는 주춤하고, 코로나 때부터 공실이던 건물은 여전히 비어있다. 4달 이상 거래가 아예 없어서 포기하고 살았다"고 호소했다.일부 소비자들은 여전히 냉랭한 분위기다. 이날 마주친 동남아 관광객 일행은 사고 현장 건너편에서 "난 저쪽(사고가 난 지점)으로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태원역 근처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밝힌 직장인 이모 씨(28)는 "참사가 일어난 뒤에는 괜히 찜찜한 마음이 들어서 굳이 이곳에 굳이 오질 않는다"며 "차라리 인근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추세고, 요즘엔 회식 장소도 한남동으로만 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자영업자 피해에 '상권 회복 운동' 노력 이어가
참사 여파로 수개월째 '유령 도시'를 몸소 체감하고 있는 인근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커지자 '상권 회복을 위해 더 힘쓰자'는 이들도 있다. 일부 건물주들은 힘들어하는 상인들을 위해 임대료를 30~40% 낮췄고, 세입자들이 지금까지 안 나가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반응을 보인다. 인근 공인중개사 이모 씨는 "상인 분들이 고생 많이 하신 만큼, 그걸 감수하고 이 자리를 이렇게 지켜준 것만으로도 내 입장에서도 정말 고맙다"고 전했다.이곳에서 5년째 거주 중인 주민 황모 씨(43)는 "점심, 저녁마다 개를 데리고 이 인근을 산책시키는데, 전처럼 젊은 친구들이 많이 보이질 않고, 이 주변에 친한 가게 사장님도 결국 버티지 못하고 최근에 문을 닫아서 안타까웠다"며 "전에는 인근 한남동에 넘어가서 밥도 먹고 그랬는데, 요즘은 '이태원 상권회복 상품권'을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고, 최대한 이 근처에서 끼니를 때우려고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이태원 상권회복 상품권'은 용산구가 지난해 이태원의 부흥을 위해 액면가보다 10%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내놓은 대책 중 하나다. 구는 300억원 규모의 해당 상품권을 포함해 지난해 이태원 참사 직후 마음안심버스, 마음 쉼, 카페 등 심리지원 사업과 0.8% 금리 중소기업육성기금 융자 지원 등 본격적인 상권회복 사업을 추진해왔다.서울시의 경우 오는 19일까지 레스토랑 앱 '캐치테이블'과 함께 맛있는 음식과 특별한 경험 'EAT!서울, EAT!태원 프로젝트'를 벌인다. 기존에 이곳을 찾던 MZ세대의 '이태원 맛집 방문'을 늘리기 위해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태원 상권 활력 제고를 위해 이날부터 14일까지 이태원 거리에 새로운 불을 밝히는 '위시볼 행사'를 여는데, 이날 방문한 메인 거리 곳곳에 이미 위시볼이 설치돼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인근 상인들도 서로 힘을 합쳐 상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곳에서 15년째 매장을 운영 중인 자영업자 박모 씨(54)는 "참사를 통해 배운 게 많으니 서로 조심해 가면서 영업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노력이 모여 예전의 이태원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업주들끼리 함께 모임을 가지면서도 각자 '(매출이) 얼마나 회복됐냐' 이런 말은 잘 안 하고, 손님을 다시 끌어모으기 위한 아이템을 이야기한다"고 귀띔했다.이어 "그래도 이런 노력이 모이면 상권이 조금씩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요즘 동남아, 중국에서 오시는 관광객들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며 "열심히 잘 버텨주신 덕분에 현재 참사 전보다 50% 올라왔으니 앞으로 더 괜찮아질 것이라 본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 같이 힘든 시기를 헤쳐 나가는 중이다"라고 덧붙였다.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