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 콤플렉스-사랑하는 사람의 성장이 두렵다

[arte] 김동훈의 고흐로 읽는 심리수업
고흐는 스물아홉이 되자 미술 공부에만 전념했다. 이미 미술상으로는 사업에 실패했고 신학과 진학에 낙방했으며, 탄광촌에서의 섬김도 결실을 이루지 못한 채 인생을 포기한 듯 허탈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특히 사랑에 연이어 실패하면서 자신의 무능감에 진저리가 났고, 이 땅에 존재해야 할 이유조차 찾지 못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숨이 턱턱 막혀오고 가족과도 거리를 둔 채 혼자 있을 곳을 찾아 배회하면서 더욱더 고독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바로 그때 고흐의 눈에 한 여인이 들어왔다. 그 여인의 모습이 ‘슬픔’(1882)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슬픔(1882)

I. 동정심과 보호본능

난롯가에서 담배를 들고 있는 시엔(1882)

이 작품은 고흐가 시엔(Sien)을 처음 만났을 때 그를 모델로 그린 누드화다. 여인은 기력도 없이 얼굴을 숙이고 있다. 끼니를 제때 잇지 못하고 며칠을 거르고 울기만 한 것일까?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등 뒤로 흘러내리고, 젖가슴은 말라비틀어져 늘어졌다.창백하고 깡마른 몸에 아랫배만 불룩하다. 그녀는 몸을 파는 여인이었고 다섯 살 난 딸을 가진 데다 임신을 한 상태였다. 고흐는 소묘의 맨 마지막에 19세기 프랑스 역사학자 쥘 미슐레의 글을 인용했다. “왜 이 땅에서 한 여인이 홀로 버림받아야 하나?”

고흐는 비참한 상황에 빠진 시엔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오직 자신뿐이라고 확신했다. 그녀의 얘기에 귀 기울여주고 동정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에 스스로 흐뭇했다. 자신의 조그마한 배려가 그녀의 지친 삶에 잠시 위로를 주고 절망하는 그녀에게 용기를 주는 것 같았다.

그런 자리를 몇 번 마련하자 그녀와 심금을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고흐는 집도 없어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그녀의 서러운 사연을 은밀히 나눌수록, 더욱 그녀를 동정하는가 싶더니 어느덧 그녀의 편이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를 변호하고 있었다. 이런 관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동생 테오에게 그는 말한다.“우선 그녀는 말씨가 몹시 상스러운데 그것은 아픈 탓이겠지. 그리고 몹시 신경질적이며 다른 사람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발작적으로 분노를 폭발해.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한단다.”

어쩔 수 없이 세상에서 끌려다니기만 했던 시엔 또한 고흐의 보살핌과 격려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큰 위로가 되었고 자신의 말 못할 사연을 털어놓게 되는 고흐에게 강하게 끌렸다. 서로만의 은밀한 대화와 동정심은 손만 허락하는 것 같더니 이제는 안아주는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급기야 고흐는 그녀가 두 아이와 함께 안정된 가정만 이룬다면 주위 사람들의 손가락질쯤은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었다.

“결혼…, 그것만이 그녀를 돕는 길이야. 안 그러면 고통이 그녀를 다시 옛날로 돌아가게 할 것이고, 깊은 나락으로 끌고 갈 거야.”고흐는 자신과의 만남을 행복하게 여기는 시엔을 보고 그녀와 결혼까지 작정한다. 그래서 시엔이 출산한 후에 함께 살았다. 그러면서 고흐는 부모와 형제, 친구 화가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지 않고자 한층 더 외톨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적어도 이 여인을 대할 때는 피 끓는 정열을 느꼈고 살아 있는 것 같았으며, 자신을 인정해 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벅찬 감격에 눈물이 흘렀다. 그렇다, 고흐는 비로소 이 땅에 존재할 당당한 이유를 찾았다. 도대체 무엇이 고흐로 하여금 살아야 할 이유를 느끼게 한 것일까?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천성이 아무리 착하고 고상한 여인이라 하더라도 가족이 없거나 가족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매음의 수렁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위험이 사방에 널려 있다. 그런 여인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이겠니?”

고흐는 시엔을 대할 때 강한 보호본능을 느꼈다. 자신이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이 여인은 즉시 부서질 것만 같았다.


II. 나 없이도 살 수 있는 여자라면…

하지만 시엔은 홍등가에 살고 있는 자기 어머니의 영향을 고흐보다 더 많이 받고 있었다. 더구나 그녀의 건달 오빠는 경제적 이유 때문에 폭력적으로 그녀에게 매음을 부추기곤 했다. 상황은 좀처럼 더 나아지지 않았다. 테오가 보내준 돈으로 더 이상 시엔과 두 아이를 먹여 살릴 수 없게 되자 그녀가 이전의 일을 다시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이 때부터 고흐는 시엔에 대한 감정이 이전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꼭 점점 커지는 재정적 궁핍 때문만은 아니었다. 또 다른 사실이 고흐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사실에 대한 단서가 다음의 글에 나타난다.

“그녀의 존재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불행을 면한 것 같고, 이것이 그녀의 영혼과 마음과 정신의 폐허 밑에서 살아남아 있는 것 같다.”

고흐는 이때부터 시엔이 더 이상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아니면 죽고 못살 것처럼 보였던 여인이 폐허 속에서도 살아남을 무엇인가가 그 내면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그때 그녀의 의사와 상관없이 시골 드렌테로 떠나기로 결심하고, 그녀가 자신을 따라오지 않는다면 그녀와 결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III. 메시아 콤플렉스

사랑하고 사랑받는 평범한 연인들의 사랑이 고흐에게는 왜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고흐가 이렇게 힘든 사랑을 반복적으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불쌍한 여인에게 끌렸다. 심리학자들은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끌리는 이유를 ‘메시아 콤플렉스’, 즉 구원자를 자처하는 심리라고 한다. 극단적인 자기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해결자로 나선다.

이렇듯 자신을 구원자로 여기면, 적어도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만큼은 자신이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게 된다. 그래서 자신을 원하는 사람에게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자신을 기꺼이 내어준다. 하지만 그 내면 깊은 곳에는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은 과거에 그런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 상처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메시아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은 동정심이 많으며, 기어이 나서서 대화하고 치유하려 애쓴다. 특히 그런 일련의 관계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받고 싶어 한다. 주위에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못할수록 더욱더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유대 관계를 맺는 경우가 흔하다.

지난 날 실패의 고통에 길든 고흐는 시엔에게서만큼은 인정받기를 갈구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으로 여겼다. 그는 시엔을 처음 보았을 때 적어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여인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주위의 모든 이들이 자신을 찾지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시기에 이 여인만큼은 자신을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없이도 “그녀의 영혼과 마음과 정신의 폐허 밑에서 살아남아 있는 것 같다”는 그의 표현에서 보듯, 자신을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더 이상 사랑의 감정은 계속될 수 없었다.사랑은 상대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아무리 보살피고 사랑해도 그 대상이 성장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 것이다. 동정심과 연민만이 사랑이라면 사실은 구원자 콤플렉스에 지나지 않다. 다른 관계에서 상처받은 열등감을 보상하려는 하나의 대체물에 불과하다. 그래서 동정의 사랑은 매우 위험하다. 상대가 성장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시작한 사랑이라 하더라도, 그 어떤 변화까지라도 품을 수 있는 사랑을 했다면 어땠을까? 어쩔 수 없는 의존 감정으로 사랑을 시작했더라도 어느 순간 순서를 바꿔 사랑으로 보살폈다면 어땠을까? 동정심이 사랑과 혼동을 일으킬 때, 신을 믿었던 고흐에게 다음의 성경 구절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잠언 4장 23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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