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음악 [그리고 베토벤의 피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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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경재의 사운드 오브 오페라20세기에 들어서며,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인류의 호기심은 지구가 아닌 하늘 너머 외계로 향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가득 품은 어둠 너머의 세계는 호기심의 구역이 아닌 탐사로 이어지는 장이 되기 시작했다. 1959년 소련의 무인 우주선 루나 1호의 달 탐사를 시작으로, 1969년 미국의 유인 달 탐사선 아폴로 11호는 달의 지표에 닿으며 ‘인간의 작은 족적으로 인류의 큰 도약’을 이루어 냈다. 1977년에는 나사(NASA)에서 태양계 밖을 탐사하기 위한 최초의 우주선 보이저 1호를 발사했다. 인간이 제작한 물체가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2012년, 처음으로 우리가 속한 태양계를 벗어나 행성 간의 지역으로 진입을 하였고, 지구로 신호를 보내는 장치의 기능이 다 할 때까지 무중력 상태의 우주를 항해하는 동안 발견하는 정보를 전송해 주는 임무를 하고 있다.
이 우주선에는 미래에 만날지도 모르는 외계생명체와의 정보 나눔을 위하여 지구의 다양한 모습과 소리를 담은 보이저 골든 레코드가 함께 실렸다. 한국말을 포함한 55개의 언어로 된 인사말과 함께 지구에 존재하는 자연의 이미지들과 소리, 그리고 음악들이 도금된 황동 디스크에 수록되어 있다. 그 음악 중에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도 함께 들어있었다. 당시 이 음악을 보이저 골든 레코드에 담았던 당시 우주인이자,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선택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베토벤 음악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음악을 통해 인류의 통합과 구원을 추구했던 작곡가의 이상이 우주의 무한함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은 당시 악기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 교향곡의 원칙을 넘어서, 인간의 목소리가 가장 위대한 악기라는 이념을 실은 최초의 작품이었다. 교향곡에 합창을 사용하는 일은 고전 시대 음악계의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詩) ‘환희의 송가’를 가사로 노래하는 노랫말은, 마치 전 우주가 하나가 되어 삶의 가치를 강조하듯, 인류의 보편적인 형제애를 찬양하며 삶의 환희를 찬미한다.음악사를 조명하면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사람이었던 베토벤은 단 한 편의 오페라만을 작곡했다. 이유야 다양하게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기존 음악계의 형식을 넘어서는 음악을 구현하려는 그의 음악과 함께하는 대본의 이상향이 맞아떨어지기 힘들 수 있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게다가 음악, 대본, 무대, 가수 등 다양한 구성을 이루어야 하는 오페라의 특성상, 함께 일하기 힘든 성격의 베토벤과 협력하려는 창의적인 예술가들이 많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그가 남긴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는 참으로 흥미롭고 고마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피델리오>가 작곡된 19세기 초, 유럽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복잡한 시기였다. 베토벤이 살고 있었던 비엔나도 격변의 장을 지나고 있었는데, 시대를 대표하는 계몽주의의 이상이 말해 주듯 자유의 의지, 인간의 권리와 평등이 주창되고 있었다. 작곡가 베토벤의 이상과 관심도 계몽주의에 함께 하고 있었는데, 당시 프랑스의 연극 <레오노레, 또는 부부의 사랑>이라는 작품을 접하게 된 베토벤은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오페라 작곡을 향한 영감을 받게 된다. 레오노레라는 여인이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아 지하 감옥에 있는 남편을 구출하기 위해 남자로 변장을 하고 감옥으로 들어가서 결국 남편을 구해낸다는 이야기이다. 같은 제목으로 오페라를 발표한 베토벤은 초연의 실패를 겪었다. 초연의 실패도 힘들었거니와, 계속되는 작가의 간섭과 수정 요구, 가수의 캐스팅, 극장과 협업 등이 까다로운 베토벤을 괴롭혔다. 작품의 제목을 <피델리오>, 즉 레오노라가 변장한 남자의 이름으로 바꾸고 다시 발표하여, 호평은 물론 후대에 음악적으로, 사상적으로 중요한 자리 매김을 하는 작품으로 거듭났다.
간단한 이야기 같지만, 1800년대 상황에서 여성이 남성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어두운 감옥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빛과 어둠, 성별의 차이, 억압과 자유를 대변하는 파격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음악도 이상과 의미를 담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충실한 기능을 한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주제를 품은 멜로디의 사용은 곧 독일 오페라의 거성 바그너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베토벤의 유일한 작품은 고전 시대에서 낭만 시대로의 전환을 알리는 의미 있는 등대가 되었다. 작품 중 1막 마지막 장면(O, welche lust...)에서 지하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 남장한 피델리오가 감옥 문을 열어주자, 햇볕이 드는 지상으로 나오며 신선한 공기를 누리는 장면이 나온다. 어둡고 닫힌 인공 구조물 감옥과 햇볕이 드는 신선한 공기의 자연이 대비되며 이것을 누리는 행복한 인간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동시에 자유와 좀 더 나은 삶을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을 투영시킨다. 음악의 힘이 사회의 메세지를 전달하며 긍정적인 변화의 영감을 주는 것이라는 베토벤의 의지가 잘 표현된 장면 중 하나이다.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공간에서도 인간의 희망은 끊임없이 밝은 미지의 미래를 희구하고 있음을 베토벤의 작품 <피델리오>를 통해 경험해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어찌 보면 현재에도 태양계를 뚫고 끊임없이 먼 우주로 나가는 보이저호를 닮았다.
오페라 연출가 이경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