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젊은이들이 죽어야 하나…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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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허남웅의 씨네마틱 유로버스 -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주목받은 영화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였다.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 7개 부문의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가면서 올해 아카데미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시상식의 초반 분위기를 주도한 건 의외로 독일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Im Western nichts Neues)’였다.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 감독상 등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 경합을 벌였던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시상식 앞부분에 이뤄진 발표에서 국제장편영화상, 영화음악상, 촬영상, 미술상까지 4개 부문을 수상하며 이변을 기대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3년 전 ‘기생충’(2019)과 같은 영예를 누리지 못했어도 전 세계 영화 팬에 작품의 저력을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독일에서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에 같은 제목으로 1930년 할리우드 영화로 발표된 적이 있다.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1929년 출간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독일 출신 작가는 1차 대전에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이 어떻게 인간의 가치를 무자비하게 앗아가는지 생생히 묘사하고 반전(反戰) 메시지를 담 주목받았다.
이후 1979년에도 한 번 더 영화화돼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이번이 세 번째 영화 버전인 셈이다. 다시 만들어야 했던 이유에 대해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은 “독일의 관점에서 영화화 돼야 하는데 아직 그런 시도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영화는 세계 1차 대전의 종전을 앞두고 프랑스와 경계한 독일의 서쪽 지역, 그러니까 ‘서부 전선’에서 독일을 위해 싸우는 젊은 병사들이 어떻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지에 집중한다. 영화는 참호를 박차고 나온 10대 후반의 병사가 총알이 빗발치는 적진을 향해 머뭇거리는 발걸음으로 전진하다 사망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신은 다른 죽은 병사들과 함께 땅에 묻히고, 이들이 생전 입고 신었던 군복과 군화는 수선과 세척 과정을 거쳐 신병들에게 지급된다. 그중 한 명이 바로 17세의 파울 보이머(펠릭스 카머러)이다. 파울은 서부 전선에 합류하기 전 독일군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자랑스럽기만 했다. 전쟁의 참상에는 무지한 채 적을 무찔러 영웅이 되는 헛된 꿈에 바람이 들었던 건 학교 선생님의 ‘무책임한’ 선동 탓이 컸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서 전장에 나가 목숨을 잃는 건 수많은 젊은 병사들이다. 세계 1차 대전 동안 실제로 17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서부 전선에서만 300만 명 넘게 사망했다. 1918년 11월 11일 11시의 종전을 앞두고 서부 전선에서 벌어진 최후의 전투는 독일의 군 수뇌부가 주도했다. 이들은 병사가 하루에만 4만 명 넘게 죽어가는 현실에도 프랑스와 종전 협약을 맺으려는 협상단을 경멸하며 무조건적인 전투를 명령한다. 젊은 병사들이 전장에서 탱크에 짓밟히고 총탄에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동안 군 장성 하나는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하며 배를 채우고 있다. 원작 소설에서는 병사들이 죽거나 말거나 이 수뇌부가 보고서에 ‘서부 선전 이상 없다’는 문구를 적는데, 명령하는 자와 이를 따르는 자의 간극에서 전쟁의 민낯이 가감없이 드러난다.
감독은 “독일인들이 갖는 죄책감과 두려움, 책임감 등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 말에서 세계 1차 대전 당시 독일 기성세대의 무책임이 젊은 세대를 어떻게 죽음의 진창으로 몰아넣었는지를 반면교사 삼으려는 태도를 감지할 수 있다. 이는 극 중 종전을 바라는 독일 협상단의 대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젊은 병사를 소모품 삼는 전쟁광을 향해 일갈하기를, “휴전을 망설이는 이유는 헛된 자존심 때문입니다”라고.
영화 앞부분에서 시체가 된 병사의 군복을 물려받은 파울의 죽음은 결말에 이르면 당연한 수순으로 다가온다. 예고된 죽음에 대해 ‘이상 없다’는 보고로 전쟁을 옹호한 이들의 대가는 후예들이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것이 바로 발표된 지 거의 백 년이 되어가는 독일 문학 원작을 독일의 관점에서 다시 영화화해야 했던 이유이다. 넷플릭스에서 상영 중인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지금에도 유효한 반전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