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VIP 대접은 처음"...단 10여명만을 위한 '프라이빗 도슨트'

아르떼·송은 '밤의 미술관'
"여기 그려진 레몬이 총 몇 개인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지난 11일 저녁 7시30분 서울 청담동의 복합문화공간 송은. 정규 운영시간이 끝난 까닭에 고요한 전시장 안에 정승현 큐레이터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질문을 받은 관람객 10여명이 재빠르게 손가락으로 그림 속 레몬을 센 후 저마다 "50개", "60개"를 외쳤다.정 큐레이터가 "정답은 79개입니다. 중국 예술가 허샹위가 2014년 홍콩에서 '노란 우산 혁명'이 79일간 지속했다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에요."라고 설명하자, 관람객들 사이에선 '아~' 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일반 관람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이날 저녁 7시, 송은은 10여명만을 위해 '울리 지그 중국현대미술 컬렉션' 문을 다시 열었다. 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가 회원들을 위해 마련한 이벤트 '밤의 미술관'이다. 이번 울리 지그 컬렉션 전은 지난 10일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마우리치오 카텔란, 위(WE)',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에 이어 아르떼가 두 번째로 준비한 밤의 미술관 행사다.
아르떼 회원들은 이날 글로벌 '큰손'들도 스위스로 날아가서 본다는 '슈퍼 컬렉터' 울리 지그가 끌어다 모은 작품들을 약 2시간 동안 '프라이빗'하게 즐겼다. 난해하고 어려운 게 현대미술이라지만 밤의 미술관은 예외였다. 송은에서 도슨트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정 큐레이터가 한 시간에 걸쳐 3개층에 펼쳐진 작품의 의미와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줘서다.

정 큐레이터가 1층 로비에 걸린 주황색 옷 작품 앞에 선 회원들에게 "중국의 대표적 반체제 예술가인 아이 웨이웨이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사장 옷을 통해 '누구나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하자,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 1층 바닥에 한 남자가 엎어져있는 설치작품 앞에선 "도대체 뭘로 만든 거냐", "원래 얼굴은 어떻게 생겼냐",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포즈로 전시되는 거냐" 등 각종 질문이 튀어나왔다. 밤의 미술관에 참여한 최민석 씨는 "퇴근 후엔 미술관이 문을 닫아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없었는데, 아르떼를 통해 '프라이빗'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한 작품을 느리게, 여러 각도로 뜯어보는 것도 밤의 미술관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도슨트가 끝난 후 주어진 1시간의 자유관람 시간 동안 아르떼 회원들은 마음 내키는대로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작품을 들여다봤다.

거리와 각도에 따라 다른 색깔을 뿜어내는 얀 레이의 설치작품 '엑스터시'(2019) 앞에선 이리저리 위치를 바꿔가며 10분 넘게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도 있었다. 한홍 씨는 "낮에 전시장에 오면 사람들로 북적여서 이렇게 느긋하고 여유롭게 작품을 보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