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경영난 탓에 투자축소' 공식화…"자구 아닌 자해" 우려

56조원 투입돼야 하는 송·변전 설비계획 '적신호'
산업전환·첨단산업단지 증가 등 전력인프라 수요 줄줄
한국전력이 경영난 해소를 위해 발전소와 송·변전망 같은 일부 전력시설의 건설 시기를 늦추겠다는 점을 공식화한 것을 놓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 12일 25조7천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발표했고, 이 자구안에 일부 전력시설의 건설 시기를 미뤄 2026년까지 1조3천억원 절감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물론 '안정적인 전력공급 및 안전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라는 전제를 달았다.

그만큼 한전의 경영난, 자금난이 급박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이 전기요금에 반영되지 못한 데 따른 장기간 '역마진' 구조로 한전은 2021년부터 올 1분기까지 45조원의 적자를 냈다.

부채는 작년 말 기준 193조원에 육박한다.

올해 '부분 자본잠식' 또는 '완전 자본잠식' 상태로 갈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발전 및 송·변전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한전의 투자 축소는 국내 산업 기반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당장 전기차 시장 급성장, 데이터센터 증가 등 산업 전환의 흐름 속에 전기 수요가 늘고 있다.

용인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등 첨단산업단지 구축을 위한 송전망 확충이 필요하다. 무탄소 전원 확대에 따른 전력 계통 안정화도 필요한 상황이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력 소비량은 2022년 555.9TWh(테레와트시)에서 2036년 703.2TWh로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평균 증가율은 1.7%다.

이 기간 발전시설에 대한 투자 못지않게 전력을 생산지에서 가정과 기업 등 수요자에게 전달하는 송전망에 대한 투자가 불가피하다.
최근 확정된 제10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에 따르면 2036년까지 전국의 송전선로는 현재의 1.6배로 늘어야 한다.

이에 따른 투자 비용은 56조5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한전은 전망했다.

당장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와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1조원, 수도권 3기 신도시에 1조1천억원 규모의 신규 송·변전 투자비가 각각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여기에는 삼성전자가 2042년까지 용인에 짓기로 한 세계 최대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로의 전력 공급 비용이 반영되지 않았다.

또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등 무탄소 전원의 비중이 높아지는데, 이들 발전소가 대부분 지방에 있는 만큼 여기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의 첨단전략산업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이 시급한 현안이다.

이는 곧 대규모 송전망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한전의 투자 지연은 장기적으로 전기 공급 능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고, 안전에까지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구'가 아니라 사실상 '자해'에 가깝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전의 생산 능력에 지장을 주면서 위기를 넘기겠다는 것인데, 이런 방법과 전기요금을 현실화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은지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 전력 업계에서는 재정난에 몰린 한전이 설비 투자비를 줄이거나 지급을 지연하면서 협력업체까지 자금난, 일감 감소 등 사업상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전기관련단체협의회는 최근 성명서에서 "한전의 적자 가중으로 국내 전기산업계는 생태계 붕괴가 우려될 정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