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다시 신춘호 회장을 떠올린다

송종현 유통산업부장
‘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 닌텐도 대표이사 펠로(대표에게 직보하는 임원)는 전 세계 게이머 사이에서 ‘게임의 신(神)’으로 통한다.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를 비롯해 ‘동키콩’ ‘젤다의 전설’ 등 시대를 대표하는 게임들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나왔다.

그랬던 그가 지난달 개봉한 애니메이션 ‘더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로 또다시 대박을 터트렸다. 닌텐도가 공동 제작한 이 애니메이션은 세계 매출 10억달러를 돌파했다.

韓·日의 닮은꼴 '쟁이'들

그는 1977년 입사 후 지난 46년간 오직 게임업의 본질인 ‘재미’만 천착했다. 일관되게 “게임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애니메이션에도 그랬다. “1시간 반 동안 모두가 ‘즐거웠다’고 생각할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지난달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일본 시사회). 슈퍼마리오는 평론가들에게 “서비스가 연출의 유일한 목표”(이동진 평론가)라는 등의 혹평을 받았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순도 100%의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오래전부터 그의 궤적을 추적해오면서 ‘이 사람은 참 고(故) 신춘호 농심 회장과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한국에도 시게루 펠로같이 위대한 성과를 거둔 경영인(그가 개발자인지, 경영인인지는 논쟁적이다)이 많지만, ‘OOO의 아버지’라는 명예로운 호칭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신 회장은 명실상부한 ‘라면왕(월스트리트저널)’이자 ‘신라면의 아버지’ 아닌가.장인정신도 그렇다. 신 회장은 자신을 스스로 ‘라면쟁이’라고 불렀다. 집요하게 맛이라는 식품업 본질에 집중했다. 그는 1990년대 초 해외 공략에 나설 때 특유의 매운맛을 순화시키지 않았다.

한국에서 맛있으면 세계에서 먹힐 것이란 확신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놀이는 어느 나라에서도 통한다”고 믿는 시게루 펠로와 일맥상통하는 면모다. 지금 농심의 해외 영토는 100여 개국에 달한다.

시게루 펠로는 혁신을 거듭 강조한다. “대신할 수 없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비슷한 제품이 나올 수 있게 만들면 실패한다”고 했다. 신 회장도 “식품도 명품만 팔린다”며 짜장라면(롯데 짜장면), 프리미엄 라면(신라면 블랙) 등 세상에 없던 상품을 내놨다.한국과 일본의 닮은꼴 경영인들은 요즘 같은 ‘물 빠진 저수지’의 시대에 울림을 준다. 코로나19 창궐 후 넘쳐났던 유동성이 한순간에 빠져나가자 수많은 ‘가짜’들이 빚으로 만든 추한 맨몸을 드러냈다.

'업의 본질' 추구해야

모두 “나도 피해자”라며 “버티면 우리가 승자가 될 것”이라고 강변한다. 이런 사탕발림에 속을 사람은 이제 없다. 반면 묵묵하게 업의 본질을 추구하며 혁신한 닌텐도, 농심은 이때다 싶어 실력을 뽐내고 있다.

세상엔 다양한 경영 사례가 존재하기에 “미야모토 시게루, 신춘호만 옳다”고 우길 수는 없다. 분명한 건 쟁이들의 성공 확률이 높다는 점, 많은 선례가 이를 입증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거품의 시절’이 되돌아올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이 구닥다리 같은 팩트는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장이란 잔인하리만치 냉정해 속아주는 척하다가도 ‘진짜’와 가짜를 끝내 구분해 내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