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에서 배운다"...북극의 변화는 인류의 생존

[기고] 강성호 극지연구소장
강성호 극지연구소장. 극지연구소
지난 1999년 여름, 대한민국 연구팀이 최초로 북극 바다얼음에 발을 내디뎠다. 필자도 현장에 있었던 두 명 중 한 명이었다.

그날 이후 20년간 북극을 연구하는 과학자로 살았다. 대한민국 1호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의 도움도 컸다. 이동이 제한된 극지에서 우리만의 탈 것이 있다는 것은 큰 혜택이었다. 연구주제와 지역을 직접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북극해를 누비며 북극 선생님이 낸 문제를 풀 수 있었다. 동료와 후배들의 합류로 대한민국 북극 연구도 빠르게 성장했다. 이제는 매년 수십 명의 연구원이 북극에 간다.

그러나 요즘엔 다음 세대도 북극에서 배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북극이 전례 없는 속도로 녹고 있어서다.

작년까지 얼음에 막혀서 가지 못했던 바다를 올해는 갈 수 있게 됐고, 태평양에 사는 플랑크톤들이 북극해에서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했다. 오는 2050년까지 적어도 한 번은 얼음이 없는 북극 바다를 보게 될 것이라는 예상은 현실이 될 수 있다.북극의 변화는 인류의 생존과도 닿아있다. 북극발 한파, 폭염 등 이상기후 현상은 더 자주, 더 세게 우리를 위협하는 중이다.

대한민국 정부도 일찍이 북극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비에 나섰다.

북극은 남극과 달리 대부분의 땅과 바다에 주인이 있다. 북극이사회는 이들 8개 북극권 국가 간 모임이다. 북극의 환경보호와 지속이 가능한 발전을 목적으로 한다.10년 전 스승의 날과 같은 2013년 5월 15일이 우리나라가 북극이사회 옵서버 국가의 지위를 얻은 날이기도 하다. 매년 스승이 날이 되면 북극과 첫 만남이 떠오르는 이유이다.

옵서버는 북극권 국가는 아니지만, 북극이사회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나라로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13개국뿐이다.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해 북극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경제, 산업적 이점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정부는 최근 '극지활동진흥법' 제정하고 과학 너머 경제, 교육 등 지속할 수 있는 북극 활동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했다.북극해를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차세대 쇄빙연구선도 준비 중이다. ‘한국북극연구컨소시엄(KoARC)’은 북극권 기업 간 협업 플랫폼인 ‘북극경제이사회(AEC)’와 업무협약(MOU)을 지난 10일 체결했다. 북극 비즈니스를 상징하는 AEC가 아시아 기관과 MOU를 체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민국이 북극 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학연구가 있었다. 극지연구소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태평양 쪽 북극해를 탐사하고 육상에 6개의 관측거점을 설치, 한국산 북극 데이터와 연구 결과를 확보해 정부의 북극 활동을 지원했다.

북극의 변화가 우리나라 등 중위도권 기상현상에 미치는 영향도 여러 차례 밝혀냈다. 우리나라가 북극에서 관찰자 이상의 자격을 얻는 것은 태생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과학자의 역할에는 한계가 없다. 독자적인 북극 연구 경쟁력, 초격차를 확보한다면, 이슈를 선점하고 북극 활동을 주도하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북극을 향한 우리 과학자들의 도전을 응원한다. 북극은 인류가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이다.

필자에게도 북극은 착한 선생님이 아니었다. 배보다 수십 배 큰 얼음판에 악천후까지 더해져 접근을 방해하는 건 다반사였다. 지난 1년간 기록이 담긴 관측 장비 수거에 실패한 적도 있다.

그런데도 북극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공정했기 때문이다. 노력한 만큼 신비한 이야기로 보답받았다.

나는 그곳에서 책과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가르침을 얻었다. 그래서 북극은 필자에게 오랜 선생님이다.

북극은 예전보다 훨씬 변화무쌍하다. 시베리아나 알래스카가 영상 30도를 기록하는 등 기후변화의 영향을 예상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졌다. 북극의 변화가 복잡해지면서 과학자들이 풀어야 할 문제의 난이도도 덩달아 높아졌다.그러나 인류의 생존을 위해 꼭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북극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북극에서 배우자.
북극에 있는 우리나라 아라온호. 극지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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