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에 담긴 수백 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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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최윤경의 탐나는 책1인당 연간 평균 소비량 367잔, 지난 1월 전국에 등록된 커피전문점 개수는 9만3414개. 대한민국 커피의 현주소다. 통계가 나타내는 것처럼 나 역시 커피 없는 하루는 상상할 수 없다. 단지 카페인(과 단 것)이 필요해서 믹스커피를 약처럼 입 안에 털어넣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우유도 설탕도 첨가하지 않은 아메리카노를 주로 마신다. 커피 맛을 잘 알아서라기보다는 씁쓸함이 주는 묘한 만족감이 있기 때문이다.
우스이 류이치로 지음
김수경 옮김
(사람과나무사이, 2022)
<세계사를 바꾼 커피 이야기>는 아메리카노처럼 첨가물 없이 담백하게 커피의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절한 책이다. ‘커피’라는 단어에 가벼운 티타임을 떠올렸다가, 8개의 장에서 펼쳐지는 깊이 있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에 예상치 못한 만족감을 얻게 된다.나무 열매인 커피를 끓여 마시기 시작한 기원은 전하는 바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이슬람 수도사들이 우연한 계기로 이 열매가 지치지 않는 힘을 갖게 해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공통적이다. 수면장애, 두근거림, 식욕부진은 카페인의 대표적 부작용이지만, 수피교 수도사들은 바로 이런 이유로 커피를 사랑했다.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기 위해, 음식에 집착하지 않고 금욕적인 생활을 꾸리기 위해 애쓰는 수도사들에게 커피는 신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해주는 마법의 음료였다.16세기 초반 오스만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 생기기 시작한 커피하우스는 오스만제국을 찾은 유럽의 상인과 여행자들을 따라 유럽으로 퍼지게 된다. 우리에게 커피 하면 생각나는 유럽의 도시는 빈이나 파리가 우선이지만, 사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카페 문화가 발달한 곳은 다름 아닌 런던이다. 영국 상인 대니얼 에드워즈가 터키에서 귀국하며 데려온 시종 파스칼 로제는 아침마다 주인에게 커피를 내려 대령했는데, 호기심 어린 지인들이 쉼 없이 몰려들자 아예 커피하우스를 연 것이 시초라고 한다.
시민사회에 대한 갈망이 조금씩 싹을 틔우던 17세기 영국에서 커피하우스는 영국 시민들이 바라던 ‘공적 세계’가 되어주었다. 세계 각지의 다양한 정보에 목말라 있던 상인들이 정보를 교류하는 장소가 되어주었고, 나아가 정치적 여론 형성의 장이 되었다. 이를 못마땅히 여기던 당대 어느 보수 인사는 ‘커피하우스는 모반과 정치적 허위 선전, 인신공격의 온상이 되어가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단다.
수도사들의 수행을 위한 음료였던 커피는 역사의 흐름과 함께 시민의 음료, 혁명의 음료, 권력의 음료를 거쳐 이제는 가장 사적인 음료가 된 듯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커피를 준비하는 마음은 어쩌면 그 옛날 수도사들이 커피를 내리던 마음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나를 오롯이 들여다보는 시간. 책 한 권이 함께한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