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사드 보복 망령부터 떨쳐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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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우 베이징 특파원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냉각되고 있다. ‘제2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중국의 상황을 보면 한국에 경제적 압박을 가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대체적 분석이다.
중국 경기는 ‘제로 코로나’ 해제 약발이 벌써 떨어져 가는 상황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집권 후 처음으로 외자기업(LG디스플레이)에 방문할 정도로 외자 유치에 목말라 있다. 주요 7개국(G7)이 오는 19~21일 일본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경제적 위협에 대응하는 공동성명을 내놓을 예정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원재료 수출통제 경계해야
중국의 보복 가능성은 언제나 염두에 둬야 한다. 사드 보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사례를 반복해선 안 될 일이다. 중국이 보복을 벌인다면, 그 형태는 불매운동이나 수입 차단보다는 주요 원재료 수출 중단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중국 내수시장 의존도가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자국 기업을 우대하고 외국 기업에 각종 규제를 더하면서 중국 시장의 효용성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원재료 수출 중단은 한국에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다. 중국이 2021년 하반기 요소수 수출을 중단하면서 한국은 전국 물류가 마비될 위기를 겪은 바 있다.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나 ‘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리는 희토류는 중국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
중국이 보복을 가한다고 해도 한국의 대응은 사드 당시와는 달라야 한다. 한국이 중국에 당하고만 있어야 할 정도로 약하지도,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한국엔 반도체라는 압도적인 무기가 있다. D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이 세계 시장의 95%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은 마이크론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한국이 반도체를 팔지 않으면 중국 전자산업은 궤멸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누구 탓"은 하지 말아야
한국 경제의 반도체 의존도가 높고, 그 반도체의 중국 비중이 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 보복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이 유사시에 반도체를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을 중국이 갖도록 해야 한다.2017년 사드 보복 당시는 어땠을까. 한국 반도체의 중국에서의 위상은 그때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맞대응은커녕 납작 엎드렸을 뿐이었다. 정치인들은 잘잘못을 따지기에 바빴다. 치졸한 보복을 한 것은 중국인데, 한국에선 ‘누군가가 잘못해서 벌을 받았다’는 식의 책임론이 난무했다.당시 중국에서 일했던 한 외교관은 “사드 보복에 허둥지둥한 건 외교적 역량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털어놨다.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본 중국은 그 이후로도 한국에 아쉬운 상황마다 사드 문제를 꺼내 들고 있다.
호주의 대응은 주목할 만하다. 호주의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에 중국은 호주산 와인, 석탄 등의 수입을 잇달아 중단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의존도가 60% 이상인 호주산 철광석은 계속 수입했다. 호주는 쿼드(QUAD), 오커스(AUKUS) 등으로 오히려 대중 공세를 강화했다. 그 결과 중국은 호주산 농산물과 석탄을 다시 수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