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52년 된 그린벨트 규제, 투자만 멍든다

'부실행정'에 기업 두고두고 발목
개발연대식 그린벨트 재정립을

김대훈 사회부 기자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는 공무원에게 ‘금단의 열매’나 다름없죠.”

경기도의 한 고위 공무원에게 공장 조성 뒤 그린벨트로 묶인 기아 광명오토랜드 등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가 왜 52년간 그대로인지 묻자 이런 미묘한 답이 돌아왔다.경기도 토목직 공무원 중에는 ‘그린벨트 트라우마’를 지닌 이들이 적지 않다. 풀어달라는 요청은 많지만 진짜로 풀어준 공무원은 반드시 구설에 오르고 감사 등에 시달려야 했다. 옷 벗은 이도 많다. 규제 완화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흔히 ‘소하리 공장’이라고 부르는 기아 광명오토랜드는 이런 공무원들의 ‘자기 보호 본능’에 50년 넘게 시달려 왔다. 1970년 공장을 착공했는데 1971년 그린벨트로 지정된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공장 연면적이 여섯 배로 넓어지는 동안 증축 때마다 까다로운 인허가에 시달리고 보전부담금을 물어야 했다. 경기 광명시가 기아를 위해 중앙정부에 ‘이제 좀 제발 그린벨트 풀어달라’고 건의했을 정도니 더 할 말이 없다.

그린벨트 규제는 1971년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녹지 자원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마련됐다. 국토 난개발을 막고 미래 개발을 위한 여유공간을 확보하려는 목적도 컸다.지방에선 더 이상 그린벨트가 큰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2000년대부터 국토 균형발전을 목적으로 전국 대도시 주변 14개 그린벨트 중 비(非)수도권 7곳을 풀어줬다.

반면 수도권에서는 실질적으로 그린벨트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게 분명한 곳에서도 해제가 안 되고 있다. 기아의 광명오토랜드, 빙그레의 남양주 공장이 대표적이다.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아파트, 도로, 학교, 상가에 이미 둘러싸여 ‘그린벨트 섬’이 됐다. 경기도엔 이런 그린벨트 내 공장이 71곳이나 된다.

반면 고양·김포·하남시 등에는 비닐하우스, 야적장, 음식점 등으로 야금야금 난개발된 곳이 즐비하다. 지적도를 보지 않고선 어디부터 그린벨트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린벨트를 두고 ‘그린하우스 벨트’라는 우스갯말이 나올 정도다.

개발연대 시대의 정신을 담고 있는 그린벨트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할 때다. 이제는 폭발적인 성장이나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막는 것이 정책의 목적이 되기 어렵다. 무작정 ‘하지 마라’ ‘짓지 마라’로 일관하는 그린벨트 방식이 아니더라도 녹지를 보전하고 기후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법이 많다. 부당하게 기업의 투자를 막는 불합리는 풀어주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