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 "초·중·고 기초학력 공개하라"

시의회, 의장 직권으로 조례 공포…교육청과 정면충돌

'학력검사 공개한 학교에 포상'
조례 3월 통과→거부→재의결

교육청 "국가사무에 대한 월권"
대법 제소…집행정지 신청키로
시의회 "교육부도 공개 긍정적"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오른쪽)과 이경숙 서울시의회 서울교육 학력향상 특별위원장이 15일 서울 중구 서울특별시의회 본관에서 ‘기초학력 보장 지원에 관한 조례’를 의장 직권으로 공포하고 있다. 이솔 기자
서울시의회와 서울시가 초·중·고교 학생을 상대로 기초학력진단 시험을 보고 그 결과를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서울특별시교육청 기초학력 보장 지원에 관한 조례’를 두고 충돌했다. 국민의힘이 주도하고 있는 서울시의회는 조례안을 두 차례 본회의에서 의결했는데도 서울교육청에서 거부하자 15일 직권으로 공포했다.

의회 측은 학생들이 코로나19 기간에 학력이 크게 저하된 상황에서 정확한 진단과 지원을 위해 필요한 조례를 정당한 절차에 따라 의결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교육청은 진단 결과를 공개하면 학교·지역 서열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평가 결과 공개 시 ‘포상’ 가능

양측이 학력평가 결과 공개를 놓고 싸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월 14일부터다. 서울시의회 내 이경숙 서울교육 학력향상 특별위원장이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우려하며 전체적으로 평가하고, 이 결과를 공개하는 학교를 포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안을 발의했다. 포상의 구체적 내용이 적시되지는 않았으나 서울시의회는 예산 등에 일부 혜택을 더 주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 방안이 3월 10일 한 차례 가결됐다. 원래는 시의회가 가결한 교육 관련 안은 교육감이 공포해야 한다. 하지만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의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교육 학력향상 특별위원회에 소속돼 있던 더불어민주당 측 의원 5명이 위원회에서 일괄 사퇴했다. 지난 3일 임시회에서 같은 안이 다시 한번 가결되자 조 교육감은 공포를 거부하고 대법원에 이 내용이 “국가 사무에 대한 월권”이라는 내용으로 대법원에 제소했다. 또 집행정지 결정을 위한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의회는 서울시와 서울교육청 같은 행정기관이 공포를 거부하는 사안에 대해 5일 후 직권으로 공포할 수 있다.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은 이날 오전 직권 공포를 선언하면서 “교육감이 본 조례에 대해 대법원에 제소하기로 한 것은 시민의 정보 접근권과 공교육 정상화 시도를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라고 날을 세웠다.

국가·지자체 간 ‘경계’ 다툼

시험을 보는 것 자체는 쟁점이 아니다. 지금도 전체 서울 초·중·고교생의 3%는 기초학력진단평가를 보고 있다. 표본을 수집해서 교육정책에 반영하려는 목적이다. 전체로 넓힌다고 해서 특별히 교육청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지금도 맞춤형 학업성취도 평가(초6·중3·고2),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중3·고3) 등 다양한 평가도구가 있고 수리문해력 평가도구도 개발 중”이라며 “학력 부진 학생은 키다리선생님 등 학습지원을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공개’다. 조 교육감은 “학력 저하 우려에 공감하며 기초학력 보장 지원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본 조례가 법률 위반의 소지가 있어 제소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가 말하는 법률 위반의 소지란 ‘학생 서열화’란 민감한 주제는 국가정책으로 결정돼야 하는데, 지방의회가 나서는 것은 지나치다는 얘기다.

서울시의회는 조 교육감이 서열화 우려를 과도하게 자극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조례안을 보면 성취도 공개는 학교장이 교육감과 협의해 결정하게 돼 있고, 진단 결과 공개 등으로 기초학력 보장 지원에 기여한 사람이나 학교를 포상할 수 있는 주체도 교육감이다. 결국 조 교육감이 안 하면 그만인데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가처분소송까지 제기하겠다고 나선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국가사무’ 당사자인 교육부에서는 정작 평가 결과 공개를 장려하는 것에 긍정적인데 국가사무라는 이유를 들어 거부하는 조 교육감의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정작 이 문제의 당사자인 교육부는 일단 한 발짝 물러서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번 조례안은) 학력 신장을 위해 지자체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로, (진단 결과) 공개를 할 수 있다고 본다”며 “정부가 전체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시·도별로 다르게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양측의 갈등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 특히 조 교육감의 대법원 제소 결과에 따라 이번 사안이 국가 정책과 지방의회의 ‘경계’를 새로 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서다.

최해련/강영연/이상은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