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유령 가면은 이렇게 만듭니다 [인터뷰]

호주 출신 특수분장사 밥 맥캐런
배우 두상을 석고로 본떠 제작
도난 등 대비해 배우당 3개씩 만들어 보관
"커튼콜 때 눈물...무대는 내 심장"

오페라 극장 지하에 숨어 사는 유령과 그가 사랑한 프리마돈나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

전세계 1억4500만 명의 관객을 사로잡은 스테디셀러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가장 중요한 소품을 꼽자면 유령이 공연 내내 쓰고 나오는 가면이다. 공연 포스터 한가운데를 크게 장식하고 있는 이 가면은 '오페라의 유령'의 상징과도 같은 소품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가면 뒤에 숨겨진 유령의 얼굴과 그의 뒤틀린 콤플렉스를 상상하게 만든다.

○3D프린터로 맞춤형 가면 제작

특수분장사 밥 맥캐런(Bob McCarron·73)은 이 가면을 만드는 사람이다. 13년만에 국내 무대에 오른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공연을 위해 부산을 찾은 그를 인터뷰했다.

32년 전 호주 시드니 공연을 시작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튀르키예, 러시아 등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오페라의 유령' 특수분장을 책임지고 있는 맥캐런은 공연·영화 특수분장 전문가다. 뮤지컬 '미녀와 야수', '에비타', '올리버' 등에 참여했다.

유령의 가면은 각 배우들의 얼굴에 맞게 '맞춤형'으로 제작된다. 배우의 두상을 석고로 본뜬 다음 그 위에 조각을 하기 때문에 가면을 써도 배우의 얼굴 형태가 그대로 보인다. 가면의 안쪽은 착용감이 불편하지 않게 가죽 가운데 가장 얇은 '올드 잉글리쉬' 가죽을 붙인다.

맥캐런은 "과거에는 석고상을 만드는 데만 최소 3시간 이상이 걸렸는데, 이제는 3D 프린트 기술을 활용해 5분만에 만들 수 있다"며 "공간적 제약도 없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 3D 데이터를 받아 내가 거주하는 호주에서 바로 제작한다"고 설명했다.

'오페라의 유령'과 함께 한 30여년 동안 가슴 철렁한 사고도 몇번 있었다고. 개막 공연이 끝난 뒤 가면을 도난당한 시드니 무대가 대표적이다. 맥캐런은 "바로 다음날 공연이 있었기 때문에 밤새 작업해 새 가면을 만들었다"며 "이 사건 이후 비상 상황에 대비해 배우당 3개의 가면을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령 역할을 맡은 주연배우가 인터미션(쉬는 시간) 직후 갑작스런 사고로 공연에 서지 못한 일도 있었다. 급하게 대타를 무대에 올려야하는 상황. "평소 유령을 분장하는데 70분 정도 걸립니다. 그만큼 섬세하고 까다로운 작업이 필요하거든요. 이 때는 인터미션 20분 동안 여러 명이 달려들어 대타 배우의 얼굴을 나눠서 분장했어요. 겨우 무대를 올릴 수 있었죠."

○매트릭스·매드 맥스 등 영화 작업도

맥캐런은 '매트릭스1' '매드 맥스2·3' 등을 비롯해 대형 할리우드 영화의 특수분장을 담당하기도 했다. 영화는 공연과 달리 배우를 근접 촬영하는 클로즈업 장면도 있기 때문에 더욱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매트릭스'를 찍을 때 주연 배우 키아누 리브스의 온몸을 분장할 때는 자정에 작업하기 시작해 아침 8시에 끝났다고. 분장을 지우는 데도 세시간이 걸렸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사람들이 제가 한 작업을 알아차리지 못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분장이 실감나고 완벽했다는 의미니까요.(웃음)"

맥캐런은 조만간 중국 상하이로 날아간다. 그곳에 올릴 '오페라의 유령' 가면을 만들기 위해서다. 셀 수 없이 많은 가면을 만들었지만, 지금도 공연 개막날짜가 찾아오면 가슴이 뛴다고 그는 말했다.

"공연은 매 회차마다 새롭게 막을 올린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매번 새로운 동기를 부여받고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거든요. 커튼콜에서 배우들이 인사를 할 때면 눈물이 고입니다. 무대는 제 심장이에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6월 18일까지 부산 공연을 마친 뒤 7월 21일~11월 17일에 서울 샤롯데씨어터 무대에 오른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