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가 '망한다'고 했던 쿠팡…이마트마저 제친 비결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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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어떻게 '최강의 조직'이 됐나99%가 망한다고 했던 쿠팡이 국내 유통업 1위에 올랐다. 1분기 기준으로 이마트마저 제쳤다. ‘1%의 기적’을 현실로 만든 셈이다. 그 힘은 무엇일까.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투자, 절묘한 타이밍의 미국 상장, 창업자 김범석 쿠팡Inc 대표의 리더십 등 꼽을 만한 요소는 많다.
하지만 창업자의 영감과 돈만으로 성공한 기업은 없다. 수많은 스타트업 유망주들이 리더와 돈, 두 가지에만 의존하다 명멸했다. 바늘구멍과 같은 성공의 문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어떤 위험도 뚫고 나갈 ‘최강의 조직’이다. 쿠팡만 해도 김범석 대표가 플라이휠을 설계했지만, 거대한 바퀴를 움직이는 동력은 약 6만여 명으로 구성된 ‘쿠팡의 조직’이다.그렇다면 쿠팡의 조직은 다른 곳과 어떻게 다른가. 2010년 출범한 신생 기업이 햇수로 13년이 채 안돼 국내 기업 최초로 미국에 상장하고, 단숨에 국내 1위 유통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사실, 답이 없는 얘기다. 결과론적일 수 밖에 없다. 모든 성공한 기업에 관한 스토리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지금부터 기술하려는 쿠팡에 관한 조직론은 단편적인 분석이다. 그들만의 조직 문화를 상징할 법한 몇 가지 특징들을 열거하는데 그칠 수 있다. 하지만 조각들을 잇다 보면 언젠가는 전체의 윤곽을 어렴풋하게나마 그릴 수 있는 법이다.
“연(緣)을 끊어라”…상사 표정을 읽을 필요 없는 조직
쿠팡은 지금도 모든 회의를 비대면 화상으로 한다. 미국,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 해외 각지에 흩어져 있는 임직원들이 워낙 많다 보니 화상 회의가 잦다. 지난 3년 간의 펜데믹은 이를 가속화시켰다.다른 조직과의 차이점은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네이버, 카카오 등 유연한 조직 문화를 자랑하는 IT 기업들조차 코로나가 종식되면서 회사로 다시 출근하고 있지만, 쿠팡은 여전히 재택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효과는 결과로 입증 중이다. 매 분기 매출과 이익이 성장하고 있고, 신규 사업의 진행 속도도 빠르다.
유독 쿠팡에서만 비대면 회의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거꾸로 다른 조직이 왜 임직원들을 다시 불러들였는 지를 통해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한 유통 대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를 비대면으로 했을 때 가장 큰 어려움은 표정과 말의 뉘앙스를 읽지 못하겠다는 것이었어요”임원이 직원과 화상 회의를 할 때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또 다른 기업 관계의 말이다. “일단 배경 화면만 봐선 직원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잖아요. 집에 있는 건지, 아니면 어디 다른 데 놀러 간 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하니까 끝도 없더라고요. 게다가 내 말을 제대로 듣고 있는 지도 확인하기 어렵고요”
공채 없는 쿠팡, 학연 지연 혈연도 없다
쿠팡에서 지금까지 비대면 화상 회의가 가능한 건 상대방의 표정과 뉘앙스를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로지 업무에 관해서만 얘기한다. 상사가 지시하고 부하가 따르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권한과 책임 범위 내에서 치열하게 토론한다. 대표 등 임원도 예외가 없다.일반 조직에서 이 같은 회의 문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상명하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조직이건 규모가 클수록 관료제적인 요소가 있을 수 밖에 없어서다. 회의를 위한 회의, 임원의 일장 훈시로 변질된 회의는 역설적으로 회의를 대면으로밖에 할 수 없는 이유다. 관료제의 근원은 연 맺기다. 학연, 지연, 혈연 등 어떤 방식으로건 맺어진 인연은 수직적인 업무 구조와 연결되면서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를 만든다. 쿠팡에는 연이 없다.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외국인들이 상당수여서 학벌은 애초부터 중시되지 않는다. 물론, 뽑아놓고 보면 미국 아이비 리그 출신이거나 서울 주요 대학 출신이 대부분이지만 채용시 학연, 지연, 혈연을 고려하지 않는다.
쿠팡이 공채를 뽑지 않는 것도 한국 기업 특유의 조직 문화에 물들지 않기 위함이다. 쿠팡은 대부분의 직원을 경력자로 채운다. 일반 직원은 4번, 임원은 6번의 면접을 거쳐야 한다. 한 번의 인터뷰 시간은 1시간이다. 거의 모두가 ‘프로페셔널’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오로지 자신이 맡고 있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좋게 보면 일 중심의 조직이고, 부정적으로 보자면 무한 경쟁의 정글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