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출산은 바보짓' 인식부터 바꿔라

출산 장려 표어 하나 없는 한국
日·조지아의 국민적 운동 참고를

윤계섭 서울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대재앙을 초래할 것이다.”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가 저서 <인구론>에서 한 주장이다. 고전주의 경제학의 고전이 출판된 지 225년이 지난 현재, 많은 나라가 맬서스의 경고와 정반대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저출산과 인구 감소다. 해외 학계는 출산에 대한 문화의 영향력에 주목하고 있다. 문화가 출산율의 중요한 결정 요인이며 출산에 우호적인 문화는 출산 정책에 승수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는 많다.

이스라엘에서는 역사를 통해 형성된 공감대가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다수지만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유대계와 소수지만 출산율이 월등히 높은 아랍계로 이뤄진 이스라엘. 유대계 국민들은 출산을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로 받아들였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소수 국민으로 전락할 것을 우려했다. 천신만고 끝에 세운 나라를 아랍계에 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 덕분에 이스라엘은 인구 과밀을 걱정할 정도가 됐다. 파격적인 난임 지원과 어우러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독보적인 출산율 1위를 자랑한다.조지아는 신앙심이 인구 위기 극복을 도왔다. 세계 3대 기독교 국가인 조지아는 소련에서 독립한 뒤 출산율이 폭락했다. 난관 타개의 주역은 정교회 총대주교 일리아 2세였다. 범국민적인 존경을 받아온 그는 셋째나 그 이상의 아이에게 세례를 해주겠다고 선언했다. 대부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2003년 1.5명까지 추락한 출산율이 2015년 2.2명으로 치솟았다. 정부가 출산 장려 제도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일리아 2세의 호소에 동참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출산율 반등 비결은 민·관이 하나가 된 ‘출산 문화 캠페인’이었다. 2000년대 초, 신생아가 줄고 사망자가 늘자 언론은 “일본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종을 울렸다. 정부는 기업과 함께 인구 1억 명 사수 운동을 시작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심으려는 노력을 전개했다. 미국 뉴욕시 브랜드 ‘아이 러브 뉴욕’에서 착안한 ‘위 러브 아까짱(아기의 애칭)’ 구호가 곳곳에 등장했다. TV와 인터넷, SNS에는 시민들이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콘텐츠가 넘쳐났다. 전방위 지원 정책과 함께 출산율 하락 추세가 멈췄다.

출산 문화 이론은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2022년 현재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악이다. 모순적인 정책 조합이 원인이다. 2005년부터 무려 280조원의 예산을 쏟아붓고도 결혼, 임신, 출산과 육아를 부정적으로 보는 문화를 방치 또는 조장했다. 뇌리에 남는 출산 장려 표어 하나 없었다. 반면 남녀 간 증오와 불신을 조장하는 주의 주장이 넘쳐났다. 그 결과 단군 이래 최악의 실업 늪에 빠진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바보짓’으로 여겼다. 비혼과 비출산을 ‘힙’한 것으로 믿는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7년 만에 저출산대책위원회를 주재하고 고비용, 저효율의 기존 정책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한다. 성숙한 사회 구성원과 함께 출산 우호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 적대적 문화와 싸워야 한다. 편향된 시각에 맞설 균형 잡힌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감성에 호소하려는 노력도 절실하다. 대한민국은 초단기간 내에 산아 제한에 성공한 저력의 나라다. 산모와 가족, 영·유아에 대한 배려 조치와 함께 바람직한 출산 문화를 통해 인구 절벽을 탈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