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겨레의 스승, 세상의 스승이 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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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 세종학당재단 이사장가정의 달 한가운데 스승의날이 있다. 사실 스승의날이 처음부터 5월 15일이었던 것은 아니다. 1958년 5월 8일, 충청남도에 있는 한 고등학교 청소년 적십자 단원들이 세계 적십자의 날을 맞아 자신의 스승을 찾아가 위문한 데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 뒤 날짜와 명칭을 바꿔 기념해오다가 1965년에 이르러 5월 15일을 스승의날로 지정하게 됐다. 5월 어느 날이던 스승의날이 5월 15일로 정해진 것은 그날이 세종대왕 탄신일이기 때문이다.
한글은 1443년에 창제되고 1446년에 반포됐다.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이후 무려 반만년의 우리 역사를 돌아볼 때 한국인이 고유한 문자 없이 산 시기는 꽤 길다. 지식인들은 한자를 사용해 문자 생활을 누렸다지만 말할 때는 한국어로, 글을 쓸 때는 중국어를 표기하는 한자로 적어야 했으니 일반 백성은 문자 소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두, 향찰, 구결로도 우리 말소리를 정확하게 기록할 수 없어 ‘문어 불통’의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웠다.당시 문자로 의사소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차별적인 일이었을까.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해례본>의 세종대왕 서문을 보면, 백성들의 문어 소통을 위해 한글을 창제했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글 창제로 비로소 계급과 성별의 차이 없이 누구나 문자를 사용한 소통과 교류가 가능해진 것이다. 한글이라는 혁신적 창작물이 백성들에게는 배움의 시작이 되고 문자 생활의 출발이 됐으니, 겨레의 영원한 스승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스승의날로 삼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네스코가 세계 문해의 날에 문맹 퇴치에 이바지한 개인이나 단체에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수여하기에 이르렀다. 한글 창제는 한국인에게만 의미 있는 사건은 아닌 듯하다. 세계 84개국 244개 세종학당에서도 매년 5월, 일제히 지역별 한국어 말하기·쓰기 대회를 개최하는데, 세종대왕의 탄신을 기념하고 존경의 마음을 담아낸 듯 그 시기가 절묘하고 의미심장하다. 만약 세종대왕의 결심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세종학당재단 창립 10주년을 축하하는 외국인들의 흥겨운 메시지와 한국어 단어 쓰기 ‘인증샷’을 감상할 기회도 놓쳤을 것이다. 또 한국어의 감칠맛 나는 정서나 미묘한 느낌을 살려 글을 쓰는 외국인 학생들의 감동적인 글을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세종대왕은 겨레의 스승에서, 한글로 소통하기 시작한 온 세상 한류 팬의 스승이 되셨다고 할 만하지 않은가. 화사한 이 봄 스승의날 즈음, 세상의 스승이 되신 세종대왕을 떠올리면서 국립한글박물관 나들이를 해보는 것도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