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기대 이론' 정립한 시카고학파 거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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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루카스 美 시카고대 명예교수 별세합리적 기대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루카스 미국 시카고대 명예교수가 15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5세.
밀튼 프리드먼의 수제자
199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자본주의, 난관 극복하며 발전"
글로벌 금융위기때 한경과 인터뷰
시카고대는 이날 루카스 교수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루카스 교수는 1937년 미국 워싱턴주 야키마에서 태어났다. 시카고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카네기멜론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1975년부터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로 일했다.시카고학파의 거두였던 고(故) 밀튼 프리드먼 시카고대 교수의 수제자로 꼽히는 그는 ‘합리적 기대 이론’으로 199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입수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동원해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고 이 예측에 기초해 경제행위를 하는데, 루카스 교수는 이때 사람들이 체계적인 오류가 없는 합리적 기대에 따라 행동한다고 봤다. 즉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더라도 이미 시장은 합리적 기대에 따라 자율적으로 조정되기 때문에 정부의 시장 개입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정부 정책으로 물가와 실업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케인스주의 경제학을 반박하는 내용이다.
1970년대 주류를 이룬 케인스학파는 ‘실업률과 물가에 역(逆)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필립스 곡선에 따라 정부가 최적의 정책 조합을 선택할 수 있다고 봤다. 예컨대 정부가 물가 상승을 감수하면서 돈을 풀거나 금리를 내리면 실업률을 낮출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합리적 기대이론에 따르면 정부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확장적 통화정책을 펴면 근로자들은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소득 감소를 우려해 소비를 줄인다. 또 물가 상승을 이유로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기업들은 소비 감소에 따라 고용을 늘리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실업률은 낮아지지 않은 채 물가만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정책 효과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 같은 루카스 교수의 비판은 기존 거시경제학에 합리적 기대를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현대 거시경제학의 새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루카스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 상금 절반을 이혼한 부인에게 준 일화로도 유명하다. 루카스 교수의 전처는 이혼서류에 1996년 이전에 노벨상을 받으면 상금 일부를 위자료로 지급한다는 조항을 넣었고, 기한 만료 20일을 앞두고 조항이 실행됐다.
로버트 시머 시카고대 경제학과장은 학부 홈페이지에 올린 추도문에서 “루카스 교수는 혁명적인 연구와 교육, 리더십이란 유산을 남겼다”며 “거시경제학에 미친 그의 업적에 대한 이 같은 평가는 전혀 과도하지 않다”고 밝혔다.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로머 미국 뉴욕대 교수가 루카스 교수의 제자다. 로머 교수는 루카스 교수와 함께 내생적 성장이론 등을 연구했다. 한국에서는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와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등이 루카스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과정을 다닐 때 루카스 교수에게 배웠다.루카스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기도 했다. 금융위기로 전후 최악의 경기침체가 닥쳤을 때였다. 루카스 교수는 당시 인터뷰에서 “자본주의는 이런 난관을 극복하면서 굳건하게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