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러시아 교역, 인도는 안되고 中은 된다?…딜레마 빠진 EU

유럽연합(EU)이 대(對)러시아 제재안 확대를 놓고 딜레마에 빠진 모양새다. 러시아와 교역을 지속하는 중국·인도 등 제3국을 대상으로 제재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추진하면서도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6일(현지시간) "러시아의 4월 원유 수출량이 작년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이후 월간 단위로 가장 많았다"며 "러시아산 원유의 80%는 중국과 인도에서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4월에 일평균 83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했다. 3월보다 일평균 5만 배럴 늘어났다. 2021년 일평균 750만 배럴과 2022년 일평균 770만 배럴 수출량을 뛰어넘는 수치다.IEA는 "러시아는 대안 구매처를 찾는 데 어떤 난항도 겪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EU 주도로 러시아산 원유 및 정유 제품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해당 조치는 러시아가 서방 외 지역으로 수출로를 다변화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다만 원유 선적량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4월 원유 판매대금(150억달러)은 작년 동월보다 27% 줄어들었다. 이와 관련해 IEA는 "부분적으로는 전 세계 에너지 가격이 전체적으로 하락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방의 금수 제재, 가격상한선 제재 등으로 인해) 러시아산 원유가 글로벌 벤치마크보다 더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다만 러시아가 가격 상한제의 제재를 받지 않는 비(非)서방 유조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면서 할인폭이 좁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4월 원유 판매대금이 작년 4월 대비로는 감소했지만, 3월보다는 17억달러 가량 늘어난 점을 설명한 것이다.러시아가 서방 제재에도 원유 수출로 곳간을 채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자 EU는 추가 제재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러시아와 교역을 계속하고 있는 중국, 인도 등 제3국으로 제재 범위를 넓히는 방안이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인도가 러시아 원유를 정제해 유럽에 재판매하는 것을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 원유를 이용해 인도에서 가공된 디젤이나 휘발유가 유럽에 진입한다면 그것은 확실히 우리 서방의 제재를 우회하는 것"이라면서 EU 회원국들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날 로이터통신은 "EU의 제3국 제재 확대 방안이 당초 초안보다 완화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는 관련 제재안에 관한 지난주 첫 회동에서 독일 측이 향후 중국과의 관계 악화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게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집행위의 수정안은 '러시아 제재 회피에 관여한 개별 기업을 제재 대상으로 분류하는 등의 대안이 고려돼야 한다'고 적시했다. 앞서 초안에는 러시아 제재를 우회한 특정 국가와의 교역을 아예 제한하는 방식이 거론됐었다.한편 이날 FT는 "미국과 EU가 앞으로 러시아 등에 대한 제재에 있어 단결력을 높이고 긴밀히 협력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방의 공동 제재를 더욱 효과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제재 정책을 조율해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지난달 벨기에에서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과 EU 대외서비스이사회 측 인사들이 모여 논의한 사항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