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속 심시티·버블버블…게임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
김희천 작가 대형작 '커터3', 45분 게임 상영
로렌스 렉, '노텔'의 '서울 에디션' 등

"코로나 이후 게임과 동기화된 우리 삶 표현"
문 앞에 경복궁을 두고 있는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이 미술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폭발음, 기계음 등 온갖 효과음들이 귀를 사로잡는다. 어찌 보면 소음과 더 가까운, 미술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리들이다. 이 소리는 모두 전시관 안에 있는 '게임기'가 내는 소리들이다.

게임기가 미술관 안으로 들어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지난 12일부터 열리고 있는 '게임사회' 전시를 통해서다. 게임을 주제로 한 현대미술 작가 8명의 작품 30여점을 선보인다.비디오 게임이 세상에 등장한 지 50년이 흘렀다. 반세기의 시간을 지나오며 게임의 문법과 미학이 동시대의 예술과 문화, 더 나아가 인간의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돌아보기 위해 마련했다.

'게임이 과연 예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다. 2012년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스미소니언미술관이 심시티, 팩맨 등 흔한 비디오게임들을 주요 컬렉션으로 소장하면서 게임과 현대미술의 관계에 대한 논란이 시작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두 미술관이 당시 소장했던 게임 9점도 함께 관객을 찾는다.
서울박스에서는 김희천 작가의 대형 신작 '커터 3'가 소개된다. 크고 넓은 공간에 높이만 14m에 달하는 거대한 LED패널을 설치하고, 게임 영상을 45분간 상영한다. 관객들은 앞에 놓인 소파와 헤드폰을 통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의 모습과 게임 화면을 한꺼번에 관람한다. 계속 어딘가에 들어가고자 시도하지만, 계속 '출입 실패'라는 새빨간 경고 메시지 앞에서 좌절하는 캐릭터의 모습은 왠지 모를 섬뜩함을 안겨준다.
현대미술 작가 로렌스 렉은 이번 전시를 위해 작품 '노텔'의 '서울 에디션'을 내놨다.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을 모티브로 게임을 만들었다. 이번 전시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과거 국군병원 자리에 지어졌다는 점에 착안하여 게임의 배경을 설정했다.
대형 화면 앞에 총 한 자루가 놓여 있다. 관객이 다가와 총을 잡으면 게임이 시작된다. 이 작품은 작가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의 2021년 작품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다. 총자루를 쥔 관객은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스크린을 향해 총을 쏴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

정신없이 총을 계속 쏘다 보면 '당신은 성소수자와 흑인을 지키는 데 실패했습니다. 당신은 여기 있을 자격이 없습니다.'라는 섬뜩한 메시지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트렌스젠더이자 흑인인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사람의 선택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직접 관객이 경험하며 느낄 수 있게끔 표현했다.이렇듯 전시관 내 대부분의 작품은 체험형으로 이뤄졌다. 관객이 직접 게임을 즐기면서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 특별한 점은 이번 전시에 소개된 게임들엔 '장벽'이 없다는 것이다. 직접 원하는 대로 조립이 가능한 컨트롤러, 높이가 낮은 게임 박스를 통해 남녀노소 구분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번 기획전을 위해 국립재활원으로부터 게임 접근성 보조기기를 지원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Xbox)가 개발한 접근성 게임 컨트롤러도 들여와 설치했다. 이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전시관 안에 들어선 게임을 즐겨볼 수 있다.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홍이지 학예연구사는 "코로나 이후 게임은 인간의 삶과 완전히 동기화됐다"며 "‘미술관 안에서 게임이 어떤 경험을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기획한 이번 전시를 통해 기존의 게임에 대한 시각을 향해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게임이 중심이 된 만큼 새로운 재미를 느껴볼 수 있는 전시다. 미술관에 관심이 없거나 전시 관람에 흥미가 없는 사람과 함께 찾더라도 충분히 즐겁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체험형 작품이 주를 이루는 만큼 전시 관람객이 많아지면 게임기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선다. 대기자를 의식하게끔 관객 뒤에 '백미러'까지 설치했다. 자칫 전시관보다는 놀이공원과 같은 분위기가 된다. 이 때문에 관람객들은 작품의 의미나 작가의 제작 의도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이 아쉽다. 전시는 9월 10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