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주 사이에 의외의 종목…개미들 '1500억' 베팅했다 [진영기의 찐개미 찐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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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에너빌리티, 5월 코스피 개인 순매수 3위2차전지주로 가득 했던 개인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의 친원전 정책에 힘입어 두산에너빌리티가 코스피 개인 순매수 순위 상단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해외서 원전을 수주한다면 주가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책 수혜 전망돼 자금 몰려…주가는 지지부진
"해외 수주 확인되면 실적·주가 반등할 것"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은 이달 들어 두산에너빌리티의 주식을 1500억원가량 순매수했다. 이 기간 유가증권시장 개인 순매수 3위다. 지난달 순매수 상위 종목엔 POSCO홀딩스, 에코프로, 엘앤에프 등 2차전지가 주를 이룬 것과 대조적이다.
공매도 잔고, 주가에 부담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유일의 원전 주기기 생산업체다. 원전 주기기는 핵분열을 통해 열을 만드는 원자로, 발생한 열로 증기를 생산하는 증기 발생기, 증기로 다시 전력을 생산하는 터빈 발전기 등 원전의 핵심 기기를 일컫는다. 소형모듈원전(SMR)의 주요 기자재도 공급한다.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 그룹의 중간지주사 역할도 하고 있다. 두산밥캣, 두산퓨얼셀을 산하에 두고 있다.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91% 증가한 3645억원이었는데, 두산밥캣이 실적을 견인했다. 매출액은 35% 늘어난 4조410억원이었다.최근 두산에너빌리티에 매수세가 몰린 건 친원전 정책의 영향으로 보인다. 지난달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원자력 협력을 약속했다. 설계 기술에서 강점을 가진 미국과 원전 건설·운영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진 한국이 세계 SMR 시장 진출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배경이다.국내에서도 원전 사업이 재개됐다. 지난 15일 산업통상자원부는 경남 창원의 두산에너빌리티 공장에서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제작 착수식을 열었다. 정부는 이번 신한울 3·4호기 주기기 제작 착수식에 '원전 생태계의 완전한 정상궤도 진입'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산업부는 향후 5년간 원전산업 기술 개발에 2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원전 산업에 훈풍이 불었지만 주가는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는 지난달 17일 1만9480원으로 고점을 찍고, 꾸준히 하락해 최근엔 1만6050원에 마감했다. 공매도 잔고가 증가한 점이 주가에 부담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전날 기준 두산에너빌리티 대차잔고 주수는 3001만3460주였다. 지난 2일(2472만5334주)보다 1000억원 가량 늘었다. 공매도하려면 대차거래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차잔고가 증가하면 향후 공매도가 증가할 것이라는 신호로 해석되기도 한다.
두산에너빌리티 "올해 수주 목표 8.6조…1분기에 50% 달성"
증권가에선 해외 수주가 향후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전망했다. 신석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신한울 3, 4호기 이후 국내에서 대규모 원전을 추가로 건설하긴 어렵기 때문에 해외 수주가 국내 원전 업체의 핵심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며 "두산에너빌리티의 대형원전 수주는 올해 3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배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원전 사업은 설계·조달·시공(EPC)이나 기타 플랜트 사업보다 규모가 크고 수익성이 높아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한국수력원자력은 폴란드에 추가로 원전을 수출할 계획이다. 한수원과 폴란드 민간발전사 ZE PAK, 국영전력공사 PGE 등은 차세대 한국형 원전 APR1400 기술을 기반으로 한 원전 개발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협력의향서를 체결했다. 한국이 맡게 될 폴란드 원전 사업 규모는 최대 300억달러(약 4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유진투자증권은 원전 1기(1조5000억원 기준)를 수주할 때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연간 매출액은 1500억원, 영업이익은 150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SMR을 수주하게 되면 이 수치는 올라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올해 에너지사업에서 8조6000억원을 수주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며 "신한울 3, 4호기 및 카자흐스탄 복합화력 발전소 사업을 수주해 이미 연간 목표의 50%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와 한수원 간 분쟁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달 폴란드 현지 언론에 따르면 패트릭 프래그먼 웨스팅하우스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의 프로젝트는 폴란드에서 절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형 원전이) 미국의 수출 통제와 국제법을 위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수원은 자료를 통해 "웨스팅하우스의 사전 동의 없이 APR1400을 폴란드에 수출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폴란드에서 한수원의 원전 발전소 사업을 수행하는 데 장애물은 없다"라고 했다.
다만 웨스팅하우스와 한수원 간 분쟁에 대한 우려가 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두산에너빌리티는 웨스팅에너지로도 주기기를 공급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분쟁 관련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분석했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