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누가 '성실한 사람'이었습니까

[arte] 구은서의 이유 있는 고전
알베르 카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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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광장마다 모여서 춤을 추었다."

1947년 발표된 알베르 카뮈의 장편소설 <페스트>. 코로나19가 확산되자 '팬데믹을 예언한 고전'으로 새삼 널리 읽힌 작품이죠. 이 소설은 페스트가 퍼진 도시만 보여주지 않아요. 페스트가 종식되고 활기를 되찾은 도시의 면면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교통량은 지체 없이 현저하게 증가해, 수가 늘어난 자동차들은 사람들이 밀려든 거리거리를 간신히 통과하고 있었다. 시내의 모든 종들이 오후 내내 힘껏 울렸다. 종들은 푸르른 황금빛의 하늘을 그들의 진동으로 가득 채워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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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WHO(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 비상사태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아직 코로나19의 완전한 종식을 외치기에는 조심스러운 상황이지만, 도시는 어느덧 일상의 활기를 되찾고 있어요.

소설 속 문장들은 3년 만에 마스크를 벗고 봄날을 만끽하고 있는 요즘의 풍경과도 겹칩니다."과연 교회들에서는 감사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오락의 장소들은 터질 듯한 성황을 이루었으며, 카페들은 앞일은 걱정도 하지 않은 채 마지막 남은 술을 다 털어 내놓는 것이었다. (생략) 그들은 저마다 자기 영혼의 불빛을 낮게 줄여 놓고 살아온 지난 몇 달 동안에 비축되었던 생명감을, 마치 그날이 자기들의 생환 기념일인 양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코로나19의 그림자가 옅어지고 있는 지금, <페스트>를 다시 읽기엔 너무 늦었을까요? 아니, 지금이야말로 이 책을 읽기에 알맞은 때일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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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오랑시(市). 도시의 쥐들이 원인 모르게 죽어나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4월 16일 아침,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자기의 진찰실을 나서다가 층계참 한복판에서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목격했다." 쥐의 시체를 누군가는 장난으로,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넘겨버립니다. 훗날 사람들이 앓고 죽자 그게 전염병의 징후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죠.

전염병으로 인해 외부와의 이동이 통제된 채 고립된 도시, 가제 마스크를 쓴 사람들, 장례식조차 금지 당한 유족들, 생계를 위해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막노동에 뛰어든 사람들…. 감염병이 집어삼킨 도시의 모습은 데자뷔를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페스트>는 단순히 전염병의 풍경만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아요. 그랬다면 지금껏 고전으로 대접받기 힘들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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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재난을 통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의사 리외는 폐쇄된 도시에서 의료인의 사명을 다합니다. 그의 아내는 폐결핵에 걸려 다른 도시의 요양원에 머물고 있어요. 그가 오랑시에 남아 환자들을 돌보는 사이에 그의 아내는 세상을 떠납니다. 리외는 "선생님 자신은 신도 믿지 않으면서 왜 그렇게까지 헌신적이십니까?" 하는 질문까지 받아요.

도시의 영웅은 또 있죠. 오랑시청 서기인 조제프 그랑은 시민들이 조직한 보건대의 서기 역할을 하며 인구 과밀 지역의 방역 작업을 도와요.
가장 입체적인 인물은 파리에서 온 기자, 레몽 랑베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는 오랑시에 연고가 없어요. 취재차 잠시 방문했다가 오랑시에 갇혀버리자 전염병을 다른 도시에 퍼뜨릴 위험성에도 탈출을 꿈꾸죠. 파리에 있는 사랑하는 약혼녀를 만나고 싶어서요. 그런데 그는 결국 오랑시에 남아 사람들을 돕기로 합니다. 리외가 아내와 떨어진 채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걸 전해 들었거든요.

랑베르는 말합니다.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밖에 아들이 감염 증상을 보이자 원칙대로 의사에게 신고한 오통 판사, 기도하자며 군중을 불러들인 성직자 파늘루 등 전염병에 대처하는 각기 다른 자세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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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 페스트를 몰아내는 건 영웅 한 사람이 아니에요. 평범한 사람들의 묵묵한 헌신을 소설은 담담하게 그립니다.

페스트가 한창일 때, 랑베르는 리외에게 '영웅이 되고 싶은 거냐'고 묻습니다. 리외는 답합니다.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랑베르가 다시 "성실성이 대체 뭐지요?” 묻자 리외가 말해요. “일반적인 면에서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로 말하면,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 말처럼 쉽지 않죠. 특히 재난 상황에서는요. 위기를 마주했을 때 타인이 위험에 처할 걸 알면서도 자신의 안전을 위해 직분을 포기한 사례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간에게서 간신히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면, 크고 작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직분을 지켜 결국 공동체를 지켜내는 이들 덕분일 겁니다.

소설은 페스트가 종식된 후에도 언제든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암시를 남기며 끝나요. 서늘한 경고처럼 읽히죠.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생략)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코로나19 팬데믹을 통과한 뒤 다시 읽는 <페스트>는 이렇게 묻는 듯합니다. '팬데믹 3년간,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또 다른 재난 앞에서, 당신은 어떤 태도를 취할 건가요?'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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