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도 사절"…몸조심하는 '슈퍼갑' 기재부 예산실 [관가 포커스]

기획재정부 예산실이 있는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5층 전경.
17일 오후 기획재정부가 있는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업무동과 연결된 1층 민원동 입구엔 방문증을 목에 건 수십명의 인파로 북적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커피와 쿠키를 담은 캐리어를 양손 가득 든 채 출입구를 통과했다. 일부는 지역 특산물 이름이 새겨진 쇼핑백을 들고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들이 향한 곳은 기재부 5층에 있는 예산실. 5층 복도에도 예산실 공무원들을 만나기 위해 대기하는 인파로 북적였다. 예산실 각 과마다 자리 잡은 소회의실 책상도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공간을 찾기 어렵다 보니 4층 휴식 공간 곳곳에서도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이 보였다.본격적인 ‘예산철’을 앞두고 기재부 예산실이 다른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 외부 방문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기재부는 이달 말까지 각 정부 부처로부터 예산 요구안을 일괄 제출받는다. 이후 6~8월 중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정부 예산안을 편성, 9월1일까지 국회에 제출한다. 각 지자체는 이달 초에 소관 부처에 국비 지원 예산안을 제출했다.

각 정부 부처와 지자체들이 기재부 예산실에 목을 매는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여느 때보다 한층 치열한 국비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공무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내년 예산은 윤석열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로 인해 상당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 국비 사업 중에서도 성과가 미흡하거나 타당성이 부족한 경우엔 삭감되는 사례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기자가 예산실 5층에서 만난 지자체 공무원들은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담당 사무관 일정이 밀리면서 40분째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다”며 “국비를 확보할 수 있다면 몇 시간도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사회예산 관련 부서가 있는 한 회의실에선 여러 명의 지자체 관계자들이 여성 사무관 한 명을 붙잡고 통사정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일부 지자체 관계자들은 지역 특산품을 들고 회의실에 들어가다가 예산실 공무원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예산실은 커피나 쿠키 등의 간단한 다과뿐 아니라 특산품 등 선물을 일절 받지 않는다. 김완섭 예산실장 집무실이 있는 5층 문 앞에도 모든 선물을 일절 받지 않는다는 포스터가 붙여져 있다.

물론 과거에도 가격이 비싼 선물은 없었고, 지역 특산품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016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시행된 후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 공무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 예산실 사무관은 “지자체에서 가져온 커피를 아무 생각 없이 마셨다가 담당 과장으로부터 왜 선물을 받냐고 호되게 혼난 적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예산실을 방문한 후 돌아가는 지자체 관계자들의 손엔 미처 전해주지 못한 쇼핑백을 들고 있는 모습에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기재부가 과천 청사에 있을 때만 해도 예의상 지역 특산품을 전달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다”며 “지금은 예산실 공무원들은 커피 한 잔조차도 일절 받으려고 하지 않는 등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정작 예산실 내부에선 경비 부족으로 ‘간식 기근’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자체 경비도 부족한데다 간부급들의 업무추진비도 한도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자체 관계자들이 협의차 찾아오면 캔음료수도 없어 생수 한 잔만 대접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예산실 공무원들의 설명이다. 이렇다 보니 지갑 사정이 여유가 있는 일부 과장급 간부들은 사비를 털어 직원들에게 간식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강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