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속 주인공들은 무엇을 마시며 사랑을 속삭였나 [책리뷰]

영화, 차를 말하다 2

서은미 외 지음
자유문고
312쪽│2만2000원
'화양연화'(2000)를 인생영화로 꼽는 중년들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한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어찌 보면 진부하게 느껴지는 불륜을 소재로 했지만, 세련되고 정제된 영상미로 그런 이미지를 지웠다.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미장센(화면에 나타나는 요소)'이다. 주인공인 '첸부인'과 '차우'의 감정선은 구체적인 대사가 아닌 구도, 조명, 색채, 소품 등으로 표현된다.그 소품의 중심엔 당시 홍콩 사람들이 즐겨 마시던 '차(茶)'가 있었다. 절절한 사랑을 나누던 이들은 과연 무엇을 마시고 있었을까. 또 당시 홍콩에서 널리 퍼졌던 원앙차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있을까.
최근 출간된 <영화, 차를 말하다 2>는 영화에 등장한 차에 얽힌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노근숙 원광디지털대 차문화경영학과 교수를 비롯한 11명의 차 전문가들이 썼다. 지난해 나온 1편이 영화를 매개로 한 '차 입문서'였다면, 이번 2편은 차를 둘러싼 역사·문화와 시대상 등 전편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담았다.

다시 화양연화. 영화의 배경이 된 1960년대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로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서구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았지만 식민 지배에 대한 불만도 고조되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런 배경에서 홍콩의 차 문화도 중국의 타지역과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다.항구도시였던 홍콩은 일찍부터 서구의 영향을 받아 커피와 차를 함께 즐겼다. 이 과정에서 '원앙'이라는 특이한 음료가 개발됐다. 원앙내차, 혹은 가배차라고도 불리는 원앙차는 밀크티와 커피를 섞은 음료다. 차와 커피가 합쳐진 모습이 마치 암수가 다르게 생겼지만 늘 함께 지내는 원앙새와 닮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원앙차는 19세기 중엽 홍콩의 가난한 부두 노동자들로부터 유래했다고 알려졌다. 항구에서 물건을 하역하던 이들은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렸다. 짧은 휴식 시간 동안 갈증을 해소하면서도 정신을 맑게 하고, 체력 보충을 하기 위해 진한 차와 자극적인 커피를 함께 마셨다고 한다.

차에 대한 지식을 접하면 영화의 결말도 색다르게 다가온다. 금실 좋기로 소문난 원앙을 본뜬 차를 마셨지만, '화양연화'의 남녀는 결국 함께할 수 없었다. 책은 '죽은 시인의 사회'(1990) '덩케르크' '너의 이름은'(2017) 등 이름난 영화에 등장하는 차의 의미를 풀어낸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