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5배 쏟아붓겠다"는데…저출산 예산 공개 후 욕먹는 日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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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저출산 대책 정밀 비교(4)"가족 관계 사회지출을 2020년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늘렸다. 이를 더욱 배증(2배 증가)하려 한다." (2월15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국회 중의원 예산위원회 발언)
기시다 "예산 20조엔으로 늘릴것" 하루만에 번복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 의외로 낮은 기대치
불분명한 재원 방안·'차원의 어디가 다르냐' 반응도
지난 2월 기시다 총리가 국회에서의 공식 발언을 하루 만에 뒤집는 소동이 벌어졌다. 가족 관계 사회지출을 2배 늘리겠다는 발언은 그가 올해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정한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처음으로 저출산 대책에 예산을 얼마나 쏟아부을 것인지 공개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23일 국회 개원연설에서 기시다 총리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을 실현하겠다"며 저출산 예산을 두 배 늘리겠다고 했다. 이 때 기시다 총리는 정확히 어떤 예산을 두 배 늘릴 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2월15일 국회에서 처음 저출산 대책의 관련 예산은 '가족 관계 사회지출'이며 이를 두 배 늘리겠다고 공개한 것이다.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 가족 관계 사회지출 예산은 10조7536억엔(약 105조원), GDP의 2.01%였다. 이를 두 배 늘리면 저출산 대책에 20조엔을 쏟아붓겠다고 뜻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3월28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670조원의 연간 예산 가운데 40조원을 저출산 대책에 배정하기로 했다. 기시다 총리는 출산율 방어에 한국의 5배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것이다.그의 공언 대로라면 일본은 새로 10조엔의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일본은 올해 예산 114조엔 가운데 사회보장비, 국채 원리금 상환비, 지자체 지원금 등 3대 고정비에만 75%를 쓰는 나라다. 세계 3대 경제대국이라고 해도 이처럼 고정비에 예산이 묶여 있다보니 맘 먹고 쓸 돈이 항상 부족하다. 최근에는 방위비 예산을 연간 5조엔 늘리기 위해 담배세를 올리려다 서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재원 마련 방안을 뒤로 미루기도 했다. 10조엔이 총리의 말 한마디에 솟아나올 리가 없는 이유다. 결국 총리 관저 부대변인격인 이소자키 요시히코 관방부장관이 다음날인 2월16일 기자회견에서 "방위비가 앞으로 GDP 대비 2%로 늘어나는데 가족 관계 사회지출은 이미 2012년 1.1%에서 2020년 2%로 늘어났음을 소개하려는 목적이었다. 두 배로 늘리려는 저출산 대책의 베이스(기준)로 언급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저출산 예산을 두 배 늘리기는 하는데 그 기준이 가족 관계 사회지출은 아니다'라고 전날 기시다 총리의 발언을 번복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뭘 두 배 늘리겠다는 건지 새 기준은 딱 부러지게 얘기하지 않았다. 한·일 저출산 대책 정밀 비교(1~3)에서 일본은 30년 넘게 저출산과 싸워 온 나라답게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선택과 집중도 잘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일본에서 기시다 총리의 '차원이 다른 저출산 대책'의 평은 썩 좋지 않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새 저출산 대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응답은 절반을 겨우 넘는다.'차원이 다르다는데 지난 30년간의 대책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라는 반응이 많다. 무엇보다 점수를 잃는 원인은 차원을 달리 하기 위해 국민들이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돈을 부담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기대가 크지 않은 또 하나의 원인은 재원 마련 방안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일본은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면 그 정책의 효과에 대한 분석과 함께 예산이 얼마나 필요하고, 이를 어떻게 마련할 지에 대한 검증이 치밀하게 이뤄진다.그런데 어떤 예산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것인지 조차 명확하게 밝히질 못하니 재원 마련 방안이 불분명하다며 야당과 전문가,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