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미식가 홀린 3인의 셰프…'모수 홍콩'서 펼친 한식 런웨이

김혜준의 아트 오브 테이블
미쉐린 3스타 '모수 홍콩' 1주년 기념 디너

안성재·신창호·조희숙 합작
모던·퓨전 한식 메뉴 선보여

중국처럼 녹두 활용한 삼계편
코스 중간엔 잘 익힌 보쌈김치
중화권 조청 디저트로 마침표
지난 4월 23~24일 홍콩 침사추이 M+ 미술관 루프톱을 바라보는 멋진 공간에 자리잡은 ‘모수 홍콩’이 1주년을 맞이해 안성재 셰프, 조희숙 셰프(한식공간), 신창호 셰프(주옥 서울)와 함께 ‘6핸즈 디너’ 이벤트를 선보였다. 남다른 관심과 애정으로 한식이 글로벌한 성장세를 보이는 시기에 이 라인업의 컬래버레이션이라니. 그것도 오픈과 동시에 홍콩 현지에서 순식간에 티켓이 매진돼 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래, 이 정도면 노마와 에이스 호텔의 교토 팝업을 능가하는 다이닝업계의 이슈가 아닐까?! 바로 홍콩행을 결정했다.

2023년 미쉐린 가이드에서 3스타를 거머쥔 모수 안성재 셰프의 눈물을 기억한다. 더불어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한국 레스토랑 중 가장 높은 순위인 15위로 훌쩍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그의 요리 인생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됐지만, 서울로 돌아와 꽃을 피웠다. 더 당당한 모습으로 홍콩이라는 도시에 ‘모수 홍콩’을 연 지는 이제 1년. 코스모스를 좋아해 레스토랑의 이름을 ‘모수’로 짓던 초심의 각오를 되새기며 홍콩 다이닝신에서 모수 홍콩은 탄탄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모수 홍콩이 문을 연 지난 1년간 안성재 셰프는 한국을 떠나 홍콩이라는 새로운 문화권에서 뿌리를 내렸다. 한식이라는 단어로 장르를 정의하기보다는 ‘모수’만이 할 수 있는, ‘모수’가 홍콩에서 펼쳐내는 요리를 만들어가는 요리사로서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6핸즈 디너는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녔다.

이번 디너에 함께한 주옥은 2018년부터 5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에 수록되며 지난해 2스타 레스토랑으로 올라섰다. 올해 아시아 베스트 51위에 오르기도 했다. 신창호 셰프는 뚝심 어린 소박함으로 독창적인 한식 메뉴를 선보이는 사람이다. 진주 처가댁에서 직접 농사지은 들깨로 짠 들기름과 발효한 식초가 그의 요리의 가장 굳건한 뿌리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려함보다는 전통 한식을 바탕으로 쌓아온 요리사로서의 기술과 경험, 감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조희숙 명인은 또 어떤가. 한식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괄목할 만한 문화적 유산으로 성장하기까지 40여 년간 힘을 쏟아온 인물이다. 지금도 현역으로서 젊은 셰프들에게 한식의 정신적인 유산을 남겨주고 있다. 한식은 단순히 하나의 음식 장르가 아니라 오랜 세월 차곡차곡 쌓여온 살아있는 유산이다. 반가, 궁중, 사찰음식 등 시대와 환경, 역사의 흐름에 따라 다채로운 색으로 발전해온 우리의 헤리티지라는 얘기다. 조 셰프는 수많은 조리법과 문화, 식재료와 계절, 담음새와 그릇의 올바른 쓰임까지 두루 전수하는 한식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는 스승인 셈이다.이 세 명의 셰프가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코스는 긴 시간 졸여내 굳혀 만든 한입의 ‘족편’과 ‘전병’으로 시작됐다. 작은 한입 크기의 차가운 아뮤즈 부는 순수하면서도 깊은 맛을 냈다. 각자의 레스토랑에서 사랑받는 시그니처 메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특히 조희숙 셰프의 삼계편은 삼계탕을 연상시키는 요리의 맛도 좋았지만 녹두를 사용하는 조리법이 중화권에서도 비슷하게 사용되는 메뉴가 있다는 사실도 이번에 알게 됐다. 신창호 셰프의 전복소라는 들기름이 가진 맑고 깨끗하면서도 건강한 맛이 좋았다. “장모님의 사랑 덕분에 신선하고 진한 들기름을 뽑아 주옥의 요리에 사용한다”는 이야기가 많은 이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가장 큰 반응을 이끌어낸 것은 바로 ‘보쌈김치’! 세 명의 셰프와 스태프는 행사가 진행되기 10일 전, 가장 잘 익은 김치 맛을 보여주겠다는 일념과 계획으로 늦은 밤 모수 서울 키친에 모여 보쌈김치를 담갔다. 이번 행사의 코스 중간에 등장한 보쌈김치는 잘생긴 배추 속에 젓갈 맛과 고춧가루 양념으로 버무린 무, 쪽파, 미나리, 밤, 감말랭이, 전복, 새우 등 호화스러운 재료들은 물론 석이버섯과 대추 고명까지 올려 완성됐다. 일부러 약간 높은 실온에 보관한 뒤 냉장고에 들어가는 시점, 비행기로 이동해 다시 모수 홍콩의 냉장고에 들어가는 과정까지 계산한 그야말로 정성이 깃든 소중한 김치였다. 그 정성 때문이었는지 손님들의 젓가락은 쉴 새 없이 시원한 보쌈김치 접시로 향했다. 이 김치는 코스 중간에 이기조 작가의 단아하고 우아한 백자에 담겨 등장해 그 존재감을 더욱 뽐냈다.

마지막 디저트는 ‘조청’이었다. 간단한 메뉴 속 활자로 먼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디저트는 조청이 만들어지기까지 쌀을 익혀 삭히고 고아서 만드는 과정을 작고 투명한 용기에 담아 설명하는 순서로 시작됐다. 세 명의 셰프는 레스토랑을 떠나는 손님들에게 멋스럽게 포장한 병과를 선물했다. 어느 하나 허투루 준비하지 않은 선수들의 멋진 세레나데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수려한 손맛과 자랑스러운 기획이 만난 ‘6핸즈 디너’는 모수 홍콩은 물론 한식 파인다이닝의 갈 길을 보여준 탄탄한 밑거름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홍콩=김혜준 푸드 콘텐츠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