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내일 죽는대요"…'#안락사임박' SNS 보고 기부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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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품법 1000만원 이하는 신고 의무 無“저 내일 죽는대요.” “안락사 임박 SOS” “후원 계좌: XXXX”
후원금·입양책임비 집행 내역 불투명
해외 입양 시 책임비 과다요구 등은 문제
지자체 보호소에서 직접 입양이 바람직
인스타그램에 #유기견입양 #입양홍보 #임보급구 등의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이런 내용의 게시물이 200만건 넘게 검색된다. 모두 버려진 동물을 입양하거나 임시로 보호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내용의 글이다. 게시글 하단엔 문의처와 후원금 계좌가 흔히 등장한다.
비즈니스가 된 '유기견 후원'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서 유기견이나 유기견 구조 요청 글을 보고 동물을 데려와 키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육장(소위 ‘강아지 공장’)에서 태어난 동물을 사기보다는 버려지는 동물을 입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덕분이다.그러나 19일 각 지자체와 동물보호단체 등에 따르면 유기견을 이용하는 ‘비즈니스’도 같이 형성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는 지원금, 입양 희망자들에게 받는 각종 책임비, 해외 입양비, 후원금 등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일부 시장에 끼어든 것이다. 선량한 구조활동자들까지 같이 피해를 입게 만든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유기 동물은 2014년 8만1147마리에서 2021년 11만8273마리로 늘었다. 통상 주인 없는 동물은 지자체(시·군·구) 지정 보호소에서 10일간 기다려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새 주인에게 분양될 수 있다. 20일까지 새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 대상으로 분류된다. 긴급구조 요청 글이 올라오는 배경이다. 원래는 구출된 동물을 돈 받고 파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인스타그램 등에서 활동하는 일부 개인들은 구조과정의 비용 발생 등을 명분으로 상당액의 ‘책임비’를 받는다. 사실은 정부와 지자체가 유기동물 입양을 하는 사람에게 이미 내장형동물등록비, 예방접종비, 진료·치료비, 중성화수술비, 미용비 등 실비보전 목적(최대 60%)으로 지원금을 주고 있는데 이런 사실을 모르는 이들에게 또 적지 않은 돈을 받는 경우가 있다.
유기동물 후원금을 개인 생활비로 쓰는 개인·단체들도 있다. 작년 개인 구조사 B씨는 5년 간 길거리를 떠돌았다는 유기견 ‘기쁨이’의 사연을 올려 후원금 164만6374원을 모았다. B씨는 한동안 치료에 대한 피드백과 지출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를 후원했던 신모씨는 “후원자들이 강하게 항의한 끝에 모금액 집행 내용이 공개됐는데 이중 절반가량인 88만5000원만 치료비로 쓰고 나머지(76만1374원)는 노래방, 카페, 배달 음식 등 생활비로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모두 분개했다”고 말했다.
'입양비 OO만원' 미리 정해놓은 곳은 피해야
유기동물 구조보다 비즈니스가 목적이 되면 품종이나 상태에 ‘선호’가 생긴다. 한 미국 내 한인 커뮤니티 '미씨USA'에는 일반 개들은 600달러, 선호 품종인 진돗개는 책임비 1000달러를 받고 입양 보낸다는 글이 올라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통상 300달러 가량이면 각종 이동비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데 ‘유기견 구조대’를 자칭한 이들이 거기에 이문을 얹은 것이다.심지어 아픈 동물을 더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한 동물병원 관계자는 “상태가 좋지 않은 동물은 이야기가 되니까 빨리 후원금을 모으고 책임비도 많이 받을 수 있다”며 “그런 동물만 골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경우도 봤다”고 전했다. 키우기 위해 구출을 한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일부 장사꾼들이 섞여 들면서 기부금을 정당하지 않은 방식으로 모금하고 투명하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문제다. 기부금품법에 따라 모금을 하는 경우 집행 계획 및 지출 내용을 정부에 제출해야 하지만 1000만원 이하의 금액을 모금하는 경우엔 해당 의무에서 벗어난다. 한 유기견 활동가는 "책임비나 입양비를 미리 자신이 정해놓은 금액으로 요구하는 곳은 일단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정상적인 구호단체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기부금 영수증 발행이 가능한지를 체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유기견 보호소라더니 '펫숍' 노릇도
‘유기견 보호소’를 가장한 신종 펫숍도 기승을 부리는 중이다. 정부에 등록된 보호소 140곳 중 일부는 동물 판매 자체가 목적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안락사 없는 따뜻한 보호소’ 등의 문구를 내걸고 있지만 홈페이지에서 동물의 프로필을 보고 찾아가면 금방 다른 곳으로 갔다거나 치료비가 많이 든다며 경매장에서 데리고 온 인기가 많은 소형 품종 개들을 구매하라고 유인한다는 것이다.
유기 동물 입양 시 접종과 중성화 수술을 필수로 해야 한다는 점을 악용해 덤터기를 씌우는 일도 벌어진다. 네이버 카페 ‘강사모’에 글을 올린 A씨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한 유기 동물이 있다는 보호소를 찾았더니 알고 보니 보호소로 위장한 신종 펫숍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기견의 분양가는 33만원, 부가세는 별도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의료 서비스 항목으로 44만원, 용품비용 22만원, 인식표 4만9500원이 추가돼 총 103만9500원을 부담해야 했다”고 전했다.
정부와 각 지자체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7일부터 유기 동물 및 피학대 동물을 임시로 보호하려면 관할 지자체에 신고하고, 관련 시설 및 운영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의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시행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것으론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민경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행동팀장은 “신종 펫숍에선 경매장 같은 데서 떼어오는 품종 외에도 반려동물 주인들이 파양한 아이들도 있어 이 영업행태까지 제한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은 새 동물을 키울 때 시군구 보호소에서 직접 입양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책임비 등의 명목으로 돈을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출금액의 60%(국비 30%, 지자체비 30%)까지 최대 25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버려지는 동물 수를 줄이려면 애초에 분양되는 개체 수를 줄여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반려동물을 펫숍이 아닌 유기 동물 보호소에서만 분양받을 수 있게 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터키·핀란드·독일·벨기에·호주·캐나다에선 반려동물을 펫숍에서 판매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이 이미 시행 중이다. 미국 뉴욕주도 펫숍에서 개·고양이·토끼 등 반려동물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2024년 12월부터 법이 시행된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