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빚을 졌다…그녀는 ‘탄소의 여왕’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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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책 리뷰
마이아 와인스톡 지음
김희봉 옮김
플루토
328쪽 / 1만9000원
전기(傳記)가 재밌기는 쉽지 않다. 제 아무리 이름난 사람의 일대기를 유명한 필자가 정리했다고 해도. 사실 사람들은 남의 인생사에 별 관심이 없다. 위인전은 어려서 질리도록 읽었다.
전기가 흥미롭게 읽힌다면, 그건 남 얘기가 곧 내 얘기가 되는 순간이다. 지금은 누가 전기를 써줄 만큼 성공한 인물도 한때는 나와 비슷한 부침을 겪었다는 사실이 독자를 책 앞으로 끌어당긴다. 천하의 스티브 잡스도 회사에서 내쫓겼을 때가 있었고, 죽음 앞에 무력하다. 최근 출간된 <카본 퀸>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탄소의 여왕'이라 불리는 저명한 과학자 밀드레드 드레셀하우스(애칭 '밀리'·1930~2017)의 삶과 업적을 다뤘다. 메사추세츠공과대(MIT) 최초의 여성 종신교수이자 연구소 교수,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은 나노과학 선구자…. 이 책이 밀리의 성취만 열거했다면 그다지 매력이 없었을 것이다. 저자인 마이아 와인스톡 MIT 뉴스 부편집장은 다른 전략을 썼다.책은 밀리가 출연한 제네럴 일렉트릭(GE) 광고 얘기부터 시작한다. 광고 속 세상에는 밀리의 모습을 본뜬 바비인형이 있고, 식당에서 밥을 먹던 밀리는 파파라치에 쫓긴다. 사람들은 매년 '밀리의 날'을 기린다. 책을 읽는 독자는 모두가 알고 있다. 현실 속 과학자가 이런 '셀럽'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책은 그가 과학계에서 엄청난 성취를 이뤄냈음에도 우리가 그에 대해 잘 모른다는 돌직구부터 때리고 본다.그리고서 그녀가 이뤄낸 것들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즉, 왜 밀리가 '탄소의 여왕' 자리에 올랐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밀리는 탄소 원자와 입체구조에 대해 연구했고, '탄소 나노튜브'라고 부르는 물질이 존재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녀의 연구는 나노(머리카락 10만분의 1 크기) 물질 연구에 획기전 발전을 가져왔다. 오늘날 배터리, 수소 저장 용기, 태양전지 등이 그녀의 연구에 빚을 지고 있다.
탄소는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눈총을 받고 있지만, 이건 탄소의 일부에 불과하다. 탄소는 무궁무진한 물질이다. 원자 결합 형태에 따라 연필심이 되기도 하고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한다. 생명의 근원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탄소는 지구상 살아 있는 모든 유기체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원소 가운데 하나다.그녀의 삶이 순탄했다면 생애를 설명하는 데 한 권의 책이 필요했을 리 없다. 대공황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여덟 살때부터 돈을 벌어야 했다. 기억력 문제가 있는 학생을 일주일에 15~20시간 가르치며 50센트를 받았다. 좀 더 자란 뒤에는 지퍼 조립 공장에서도 일했다.아이의 몸으로 매일 생계를 위한 전장터에서 싸웠다. 그녀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가장 큰 도전은 어린 시절에 살아남는 거였어요. 내가 이제까지 한 일 가운데 가장 힘들었죠."
그녀를 과학자의 세계로 인도한 건 책이었다. 전염병을 정복하기 위해 노력한 14명의 과학자에 대한 책 <미생물 사냥꾼>, 마리 퀴리의 둘째 딸이 쓴 전기 <마담 퀴리> 등에 푹 빠져 살았다. 돈을 모아 자연과학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사모았다.
이때쯤 '빌런(악당)'이 등장해야 이야기에 탄력이 붙는다. 밀리를 가로막는 빌런은 시대였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교육 기회가 극도로 제한 받던 시대다. 밀리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교 입시를 치를 무렵, 뉴욕의 4대 특수목적고 가운데 세 곳은 여성의 입학을 금지했다. 헌터컬리지고는 여고였는데, 입학시험이 엄격했다. 밀리가 다니던 중학교에서조차 학교 지원을 뜯어 말렸다.예측 가능하듯이, 밀리는 이 학교에 합격한다. 백일해에 걸려 거의 한 학년을 쉬어야 했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끝에 대학에도 진학한다. 밀리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포부가 크지 않았어요, 여자인 데다 돈도 없었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교사, 간호사, 비서 세 가지뿐이라는 말을 들었죠."
주변의 여러 환경이 밀리에게서 야망을 앗아갔다. "나의 목표는 약간의 훈련을 받은 뒤 지퍼 공장에서 하던 일보다 조금 더 나은 일을 하는 것이었어요."
'여성 과학자 선배'와의 만남은 밀리의 삶을 바꿔놓았다. 그 선배이자 스승은 로절린 서스먼 얠로. 얠로는 197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두 번째 여성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미국 여성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은 건 그녀가 최초였다.
얠로는 1949년 미래의 제자가 될 밀리를 만났다. 밀리의 역량을 알아본 옐로는 밀리에게 연구자가 되라고 독려했다. "여성 과학자가 가는 길은 (상대적으로) 더 험난하지만 단념해서는 안 된다."과연 쉽지 않은 길이었다. 코넬대에서 밀리는 강의료조차 받지 않고 전자기학을 가르치겠다고 했지만 일주일 동안 매일 교수회의가 열렸다. 경력이 충분했는데도 말이다.
"교수들은 내가 전자기학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가 아니라 남학생들이 나에게 배우려고 할지를 걱정했고 (생략) 젊은 여성이 젊은 남학생을 가르친다는 걸 이해하기 힘들어했어요."
밀리는 딸 메리앤이 태어난 지 몇 주만에 갓난아기를 데리고 실험실로 출근했다. 다행스럽게도 같은 과학자인 남편은 밀리를 지지하고 지원했다. 둘은 '워라밸'을 위해 교수직 대신에 연구직으로 옮겼다. 밀리는 MIT 링컨연구소에서 일하기로 했고, 탄소 연구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이후 밀리가 남긴 업적을 다시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어린 밀리가 마리 퀴리의 전기를 읽으며 과학자를 꿈꿨듯이, 이제 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은 <카본 퀸>을 읽을 것이다.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자신의 아이를 향해 이렇게 썼다. "나의 어린 아이에게. 밀리의 이야기는 너의 이야기이기도 해."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