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품 소리까지 들려요"…강력 사건까지 부르는 '벽간소음' 갈등

층간소음과 달리 규제 기준 없어…"소음 관리 사각, 대책 필요"

"밤에 코 고는 소리는 당연하고, 기침하고 하품하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니까요. "
경기 수원시의 한 다세대주택에 사는 30대 이모 씨는 한 번도 직접 만난 적 없는 옆집 거주자의 일과를 줄줄이 꿰고 있다.

벽을 넘어 생생하게 전해지는 소리, '벽간 소음' 때문이다. 이씨는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나 화장실에 가고, 언제 나갔다가 언제 잠드는지까지 모든 소리가 다 들린다"며 "이 정도면 같이 사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불편을 토로했다.

이어 "처음 이사 올 땐 옆집이 비어있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요즘은 견디기가 힘들 정도"라며 "반대로 내가 내는 소리가 저쪽 집에서도 들릴 거라고 생각하니 집에서 쉬면서도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층간소음은 물론 벽간소음으로 빚어지는 이웃 간 갈등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이같은 벽간소음 갈등이 살인 등 강력 사건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19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8일 수원시 권선구의 한 빌라 5층에서는 40대 A씨가 "앰프 소리가 시끄럽다"며 다툼 끝에 이웃 주민 30대 B씨를 흉기로 살해해 경찰에 붙잡혔다.

다만 B씨 집에선 스피커 등 소음을 낼 만한 물품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월 24일에는 수원시 장안구의 한 원룸텔에서 20대 C씨가 소음 문제로 옆집에 살던 40대를 목 졸라 살해해 현재 선고 재판을 앞두고 있다.

C씨는 범행 직후 시신을 본인 집 화장실에 유기했다가 이튿날 인근 파출소를 방문해 "어젯밤 사람을 죽였다.

죄책감을 느낀다"며 자수했다.

지난 3월 양평군의 한 다세대주택에선 70대가 흉기를 들고 옆집을 찾아가기도 했고, 지난해 10월 평택에서도 벽간소음 문제로 이웃을 흉기로 협박한 60대가 체포되기도 했다.
이처럼 벽간소음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점차 심화하고 있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규제는 미흡하다.

주택건설기준 규정 제14조는 주택의 각 세대를 구분할 수 있는 경계벽과 바닥 구조의 기준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층간소음과 관련한 바닥 구조에 대해선 각 층간 바닥의 충격음이 49㏈ 이하여야 한다는 구체적인 기준이 있지만, 벽간소음과 직결되는 세대 간 경계벽은 소재와 두께만을 명시했을 뿐 발생 소음과 관련한 기준이 없다.

벽간소음 발생에 따른 부실시공 등 구조적인 문제가 의심되더라도 벽을 뜯지 않고서는 규정에 맞게 충분한 소재가 사용됐는지 확인이 사실상 어렵다.

'방 쪼개기' 등 불법 시공도 문제다.

한 공간을 석고 등 얇은 소재의 임시 벽으로 나눠 분리해 이를 각각의 세대로 나누다 보니 매우 작은 소리까지 옆집으로 전해지게 된다.

이는 명백한 불법이지만, 2017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5천90동의 쪼개기 건물이 새로 적발될 정도로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벽간소음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층간소음과 달리 벽간소음은 지을 때의 기준도 없고 짓고 나서 실생활에서의 소음 기준도 없다"며 "제대로 지어졌는지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불법이 성행하고 이를 막기도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