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애국소비 뚫고 'MLB 모자' 1兆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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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패션 숨은 진주들‘궈차오(애국소비)’ 열기 가득한 중국에서 미국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MLB’ 브랜드가 잘나가는 건 이례적이다. 올해 초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이후 기류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나이키마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게 중국시장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3) 패션계 '팹리스' F&F
패션과 전혀 상관없는 브랜드
스토리 입히자 줄줄이 '히트'
김창수 회장 승부수 통해
中 진출 3년 만에 초고속 성장
올해 매출 '2조 클럽' 유력
21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국내 패션업체 F&F의 라이선스 브랜드 MLB는 지난해 중국에서 1조원 넘게 팔렸다. 2019년 중국에 처음 진출한 뒤 단 3년 만에 올린 성과다. 세계적 금융투자회사인 골드만삭스마저 “지난 10년간 중국 패션시장에서 어떤 브랜드도 보여주지 못한 성장세”라고 평가할 정도다. ‘패션계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김창수 F&F 회장(61·사진)의 승부수가 통했다는 분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해외 브랜드 K패션으로 재탄생
김 회장은 김봉규 삼성출판사 창업주(88)의 차남이다. 동성고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아버지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삼성출판사 계열 팬시 전문점 아트박스 사장을 지냈다.김 회장은 1992년 ‘패션(fashion)’과 ‘미래(forward)’의 영어단어 앞 글자를 따 F&F라는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다. 아버지 회사에서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혈관에 흐르는 ‘사업가의 피’를 거부하지 못했다.김 회장은 패션계에서 “브랜드 라이선스 사업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해외에서 인기 있는 패션 브랜드를 무작정 들여오는 기존 패션업계 관행을 거부했다.
대신 패션과 전혀 상관없는 브랜드를 들여와 F&F만의 콘셉트를 입혀 재창조하는 방식을 택했다. 미국 내에서 모자, 야구용품 정도에만 적용되던 MLB 브랜드를 다양한 패션 아이템에 접목한 게 그렇다. 아웃도어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과 라이선스 계약을 2012년 맺어 패션 아이템으로 히트시킨 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김 회장은 창업 후 줄곧 브랜드를 천착했다. ‘패션이란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옷으로 풀어내는 것’이란 게 그의 지론이다. MLB의 경우 “사랑하는 스포츠에 몰두해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담으려 했다”는 게 그의 얘기다.디스커버리에는 자연을 통해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는 라이프스타일 아웃도어란 정체성을 담았다. 애슬레저·아웃도어 열풍을 일찌감치 알아본 선견지명이란 평가도 있다.
포트폴리오 다변화 나서
F&F는 창립 30주년이던 지난해 전년 동기 대비 66.0% 급증한 1조808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증권업계는 F&F가 올해 매출 ‘2조 클럽’ 가입이 유력할 것으로 본다.특히 김 회장이 1997년 메이저리그베이스볼(MLB) 사무국으로부터 의류업 라이선스를 따와 론칭한 브랜드 MLB가 이끄는 중국에서의 성과는 업계에서 부러움의 대상이다. 중국 내 MLB 매장은 현재 880여 개다. F&F는 올해 MLB 중국 매장이 1100개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골드만삭스는 MLB가 앞으로 5년간 중국에서 연평균 30%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MLB는 올해 1조5000억원대 판매액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라이선스 브랜드인 MLB와 디스커버리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언제든 위협 요인으로 돌변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성공을 지켜본 두 브랜드가 직접 사업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F&F는 최근 유명 해외 브랜드를 사들이며 사업을 다변화하고 있다. 2018년에는 이탈리아 패딩 브랜드 ‘듀베티카’, 지난해에는 미국 프리미엄 테니스 브랜드 ‘세르지오 타키니’의 글로벌 본사를 인수했다.
양지윤 기자 y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