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뜯어보니 유충 잔뜩"…송도 신축 아파트 주민들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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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파리' 사체·유충에 아파트 주민들 골머리"혹파리 사체를 매일 치워야 하고 개인 방역을 해야 하는 게 스트레스입니다. 더욱 스트레스인 건 앞으로 좋아질 거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자 보수 신청 수백 세대…피해 점차 증가
건설사 측 "원인 파악 중…특별히 나온 것 없어"
올해 2월 말 입주를 시작한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에서 이른바 '좀비 벌레'라 불리는 '혹파리'가 약 한 달 전부터 대량 출몰돼 주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22일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에 따르면 이달 들어 입주예정자협의회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는 '혹파리' 관련 주제가 대화의 주를 이룬다. 지난 16일부터 혹파리가 집안 곳곳에 출몰하기 시작했다는 입주민 함모 씨(46)는 "3월만 해도 집 안 내부를 어떻게 꾸밀까, 어떤 가전을 살까가 주된 내용이었다면, 지금은 (채팅방 대화의) 80% 이상이 혹파리 얘기"라고 전했다.실제로 입주민들의 대화를 살펴보면 "매일 밤 자기 전에 떨어진 사체 치우는 게 일이다", "붙박이장과 화장대 서랍 뜯어보니 유충이 장난 아니다", "매일 치우는 게 일이다" 등 혹파리의 출몰에 대해 토로하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입주민들이 제공한 사진에는 노란색을 띠는 혹파리 유충 사체가 집안 내 가구 모서리나 서랍장 쪽에 모여있는 모습이 담겼다. 가구 모서리에 파고든 혹파리 사체들과 하수구 주변에 가득 모인 유충들, 가구와 가구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유충들이 가득한 모습이다.입주민 함모 씨는 "(지난 17일) AS센터에 방역을 신청했는데, 많은 가구가 몰려있어 언제 (방역이) 될지 몰라 일단 개인 방역용품을 구입했다"며 "(건설사에서) 방역한다고 연락이 와서 짐을 뺐는데, 혹파리가 없어지지 않으면 짐 쌓는 작업을 몇번이나 해야 하다 보니 힘들다"고 호소했다.
함 씨는 "외부 업체를 통한 방역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 역시 30분 정도 기계로 약을 쏘는 것 밖에 없다"며 "방역 후에도 혹파리가 더 많이 나오고 있어서 일부 주민들은 사비를 들여서 개인 방역을 신청하거나 가구를 교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건설사로부터) 구체적인 보상안에 대해 들은 건 없고 소독 신청만 받고 있다"며 "방역이 독해서 아이들 때문에 소독이 불가한 주민들도 있는데, 그런 분들의 경우엔 매일 '100마리 이상 잡는다'고 하거나 '개인 비용으로 가구를 교체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고 덧붙였다.이 아파트 전체 1820가구 중 혹파리 관련 하자 보수 신청을 한 세대만 수백 세대에 달한다. 현재 입주민들이 가입된 온라인 카페에는 '소독 요청' 글만 400건이 넘고, 피해 세대가 점차 늘면서 입주자들의 반발도 점차 거세지는 분위기다.혹파리는 파리목의 혹파리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송도에서는 2008년 이후 15년 만에 대량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혹파리 등 유충의 사체 등에 장시간 노출됐을 경우 호흡기나 알레르기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앞서 해당 아파트 입주예정자협의회는 한 법무법인을 통해 시공사에 아파트 전체 세대에 대한 점검과 혹파리 박멸, 가구 교체 등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내기도 했다. 시공사 측은 기존 방역업체 인력을 2배로 늘려 순차적으로 방역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예 가구를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주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가구 내부에 있었던 혹파리알 등이 유력한 문제 원인으로 지목된 만큼, 방역만으로 역부족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루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혹파리는 유충을 가구 목재 사이에 낳는 탓에, 한 번의 방역만으로는 박멸이 어렵다. 또한 번식력도 강해서 여러 차례에 나눠 방역을 실시해 목재 사이에 있는 유충까지 박멸하기 위해 훈증 소독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건설사 관계자는 "(혹파리 발생에 대해) 계속 원인 확인은 하고 있는데 특별하게 나온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인) 파악이 지금 안 되는 상황이고, (입주민들) 민원이 있다 보니 최대한 의견을 반영해서 전문 업체의 방역과 소독을 실시하고 있다"며 "필요 시 가구 부분 교체도 지금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