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 꿈꾸던 아들 앗아간 학교, 미움 대신 용서로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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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봉 서울예술학원 이사장 인터뷰36년 전에 있었던 학교폭력은 그의 아들과 함께 목소리도 앗아갔다. 파바로티 같은 성악가를 꿈꾸던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아버지의 목은 수시로 잠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빈도는 잦아지고 강도는 높아졌다.
서울예고와 연결된 서울아트센터, 26일 개관
음악·무용·미술 모두 즐길 수 있어
성악가 꿈꾸던 아들, 학폭으로 잃어
"못다한 아들 꿈 이뤄줄 예술가 지원할 것"
지난 22일 만난 이대봉 서울예술학원 이사장(81)은 육성 인터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목이 심하게 잠겼다. 하지만 얼굴은 편안했다. 인터뷰 내내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학교 직원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나흘 뒤(26일) 공개하는 서울아트센터 때문에 요즘 항상 웃으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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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떠난 아들이 다녔던 학교 인수
2020년 착공한 서울아트센터는 그동안 들어간 공사비만 250억원에 달한다. 이 중 200억원 이상을 이 이사장이 댔다. 그는 1975년 세운 동아항공을 모태로 참빛가스산업, 참빛동아산업 등 20여 개 계열사를 둔 참빛그룹의 수장이다. 2010년 서울예술학원을 인수해 9대 이사장에 취임했다.이사장을 맡아 서울아트센터 건립까지 온 데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그는 서울예고에서 아들을 잃었다. 1987년 당시 서울예고 성악과 2학년이던 장남 이대웅 군이 학교 야산에서 상급생의 폭행으로 세상을 떠났다. 청천벽력이었다. 그는 아들을 잃은 뒤 목이 잠겨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게 됐다.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던 이 이사장은 복수 대신 용서로 다시 일어섰다. 그는 아들을 때린 상급생을 감옥에서 풀어달라며 담당 검사에게 탄원서를 냈고, 성악가를 꿈꾸던 아들을 기리며 다양한 장학사업을 했다. 10여 년 전 서울예술학원은 망하기 직전이었다. 전 재단 이사장이 수십억원의 부채를 남기고 도망갔고, 학생들은 불안에 떨었다. 학교가 새 주인을 찾고 있을 때 이 이사장이 나섰다.
“서울을 대표하는 콩쿠르 개최”
그가 서울예고 인수에 나선 이유는 딱 하나다. 대한민국 예술교육의 요람이어서다. 서울대 입학생이 가장 많은 고교가 서울예고다. 그런 학교가 사라지면 아들이 꿈꿨던 ‘세계 무대를 누비는 대한민국 예술인’이 안 나올 거라 생각했다. 서울아트센터를 세운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이사장은 “서울아트센터 개관을 계기로 서울예고가 예술 명문대에 입학하는 디딤돌에서 세계적 예술가를 배출하는 터전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그는 예술 교육을 학생에 국한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서울아트센터는 학생을 중심으로 운영하지만 외부에도 문호를 넓혀 서울 강북권 예술센터로 키울 계획이다. 이 이사장은 “예술을 전공하는 모든 학생, 무대가 필요한 연주자와 작가, 그들의 예술을 향유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위해 수준 높은 공연·전시를 많이 마련할 예정”이라며 “그들 모두에게 시설을 적극적으로 개방할 것”이라고 말했다.이 이사장은 “예술 교육에 더욱 힘을 쏟을 생각”이라고 했다. “하늘에 있는 아들도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응원해줄 것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슬픔을 사회에 전가하기보다는 그 슬픔을 승화시키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