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빛 피부·레게머리로 재탄생한 에리얼…영화 '인어공주'

바닷속 세계·OST 등 즐길 거리 많지만…작위적 설정은 아쉬워
익히 알던 에리얼이 아니다. 디즈니 실사 뮤지컬 영화 '인어공주'의 주인공 에리얼(핼리 베일리 분)은 흙빛 피부에 레게 머리를 하고 바닷속을 헤엄친다.

환한 피부색과 파란 눈을 가진 '백인 인어공주'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성격도 중세 시대 공주라기보다는 21세기 현대 여성 같다. 인간으로 변한 뒤 궁전으로 간 에리얼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몸에 꽉 끼는 코르셋부터 벗어던지는 것이다.

높은 구두에서도 내려온 그는 맨발로 모래사장을 뛰어다닌다.

에릭 왕자(조나 하우어 킹)에게 몸을 맡긴 채 왈츠를 추지도 않는다. 대신 샌들을 신고 사람들과 다 함께 자유로이 몸을 흔든다.

롭 마셜 감독과 디즈니는 '인어공주'를 실사화하며 작품의 설정을 뒤집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배경과 캐릭터들의 외모·성격 등은 1989년 나온 원작 애니메이션과 눈에 띄게 다르다. 34년간 굳어진 인어공주 속 세계관에 매어 영화를 본다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괜찮은 오락 영화로 평가될 만하다. '인어공주'의 기본적인 플롯은 원작과 같다.

아틀란티카 바다의 왕 트라이튼(하비에르 바르뎀)의 막내딸인 인어 에리얼은 인간 세상을 동경한다.

인어와 인간은 섞일 수 없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뭍을 기웃거리기 일쑤다.

난파 사고를 당한 에릭을 구해준 뒤부터 그의 갈망은 더 커진다.

에리얼은 결국 바다의 마녀 울슐라(멀리사 맥카시)를 찾아간다.

사흘간 인간으로 사는 대신 아름다운 목소리를 맡기는 위험한 거래가 둘 사이에 오간다.

울슐라는 에리얼에게 에릭과 사랑이 담긴 키스를 하지 못하면 자기 노예가 돼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인다.

다리가 생긴 에리얼은 꿈에 그리던 에릭을 만난다.

하지만 에릭은 에리얼을 알아보지 못한다.

말을 할 수 없는 에리얼은 당신을 살린 게 바로 나라고 알릴 수도 없다.

울슐라가 끼어들어 방해 작전까지 펼치면서 두 사람은 위기에 처한다. 스토리가 식상하다고 느껴질 때쯤 빼어난 영상미가 시선을 잡아둔다.

애니메이션으로만 접했던 바다 세계가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오색찬란한 바다 생명체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바다 왕국 아틀란티카에 잠시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스커틀, 세바스찬, 플라운더 등 에리얼의 바다 친구들 역시 팬들의 우려와는 달리 자연스럽게 구현됐다.

귀에 익은 OST(오리지널 사운드트랙)를 듣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핼리 베일리는 탁월한 가창력으로 '파트 오브 유어 월드'(Part of Your World)를 소화한다.

바다 친구들이 부르는 '언더 더 시'(Under the Sea)는 절로 멜로디를 흥얼거리게 한다.

몇 해 전 온라인에서 재조명된 야욕 가득한 울슐라의 노래도 반갑다.
하지만 영상미와 음악만으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스토리의 식상함이 완전히 가려지지는 않는다.

앞서 나온 디즈니 실사 영화 '알라딘'(2019)처럼 코믹 요소를 적극 활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인어공주'에도 웃음을 담당하는 캐릭터가 나오기는 하지만 '알라딘'의 지니 같은 힘은 없다.

무엇보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이 자꾸만 몰입을 방해한다.

디즈니 영화에서 핍진성을 기대하는 관객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피부색과 억양이 제각각 다른 일곱 공주 등 작위적인 설정은 의도가 빤히 보여 거부감을 줄 수 있다.

다양성과 연대라는 교훈을 끊임없이 던져보지만 그다지 울림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부 팬들 사이에서 '블랙 워싱' 논란을 빚은 흑인 인어공주의 모습은 배우의 호연과 새로운 세계관 덕에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베일리는 캐스팅 당시부터 수년간 겪었을 압박감을 보란 듯 이겨내고 새로운 세대에 새로운 인어공주 캐릭터를 선사한다. 24일 개봉. 135분. 전체 관람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