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관 "韓美동맹은 '죽느냐 사느냐' 문제…대한민국, 3가지 도전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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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ga Shift 석학 특별기고국제 정치의 대격변이 진행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2018년 관세전쟁을 기점으로 반세기 동안 유지해온 대중국 포용정책을 버렸다. 그 후 미국과 중국은 외교, 군사, 경제, 기술, 이념 등 각 분야에서 대결 구도를 굳혀가고 있다. 신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1970년대 대중국 포용정책을 주도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4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1차 세계대전 직전과 같은 상황(pre-world war situation)에 와 있다”고 말했다.
(1) 안보·국제정세 -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국제정세, 구한말 약육강식 시대 떠올라"
(1) '세력권' 앞세운 러시아의 침공
(2) '대만통일' 내세운 中의 야욕
(3) '전술핵 실전배치' 고도화된 北
유럽에서는 작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과거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부활시키겠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세계사의 시계추를 일본이 구한말 조선을 집어삼킨 제국주의 약육강식의 시대로 되돌리려고 하는 것이다.지금쯤 중국과 북한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갖고 성공적으로 러시아의 패전과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이끌어낼지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 미국이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대만 무력통일 시도를 앞당길 수 있다. 북한의 핵 위협과 대남전략도 더욱 공세적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그나마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지켜내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다. 그런데 미국 정치는 분열돼 있고 정치와 사회 저변에 고립주의 외교 노선에 대한 선호가 상당하다. 2024년 대통령선거를 1년 반 앞둔 지금, 트럼프 지지도가 바이든 지지도를 약 6%포인트 앞선다고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때 미국의 국제적 리더 역할을 포기했고,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만일 그가 2024년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국제질서 전반과 한반도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국제 정치 상황이 이처럼 아슬아슬하다. 그 와중에 한국은 전술핵으로 우리 땅을 초토화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 이같이 엄중한 상황에 외교를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과 자세에서 긴장의 끈을 조여 매야 할 때다.
대변화(mega-shift)의 시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핵 위협, 중국의 대만 공격 가능성 등으로 안보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세계화는 저물고 미·중 패권 경쟁으로 경제 블록화 흐름이 뚜렷해졌다. 기술 변화의 속도도 빠르다. 인공지능(AI)이 상용화되고 우주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인구 감소 시대에 접어들었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한국이 그동안 이룬 성취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대변화의 시대에 대처할 해법을 한국 최고 석학들의 특별 기고문으로 찾아본다.
세계가 급변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들 간에 일반적으로 지켜져 오던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대국이라도 소국의 영토주권과 자결권을 존중하고, 무력을 통한 현상변경을 금지한다는 국제적 합의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이는 한국 같은 나라에 중요한 문제다. 한국이 경제력 세계 10위의 민주국가로 성장한 것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살벌한 약육강식의 세상이 아니라 룰을 존중하는 국제질서가 2차대전 이후 자리 잡았기에 가능했다. 룰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는 세 가지 중대한 사건이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첫째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유엔헌장에 규정된 영토주권과 자결권을 솔선수범해서 지켜야 할 국가다. 그런데 작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해 그 일부를 자국 영토로 만들어버렸다. 러시아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이에 동조하는 중국 지도자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동진해서 러시아 세력권을 압박했기에 취한 방어적 조치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 한국 사람들마저 그런 ‘세력권’ 논리에 수긍한다는 점이다. 러시아인이나 미국인이라면 몰라도 한국인이라면 그것은 곤란하다. 구한말 일본이 동일한 세력권 논리에 기반한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조선을 식민지화했는데 그것을 인정해주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강대국 중심의 힘의 논리는 권위주의 정치체제가 싫어서 민주주의를 선택한 동구권 국민의 무거운 결정을 장기판 졸처럼 가볍게 무시해버린다. 평소 강대국의 횡포를 그처럼 경계하고 질타해온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게다가 무력행사를 통해 현상변경을 시도한 북한의 남침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렇기에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러시아에 대한 국제 제재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우크라이나 국민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단합해 잘 싸워왔다. 그러나 곧 시작될 춘계 대공세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승기를 잡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6·25전쟁 때처럼 소모전이 지속된 후 정전 형태로 매듭지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 재건에 참여할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암울한 시나리오가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겨울 30만 명의 장병을 새로 전장에 투입했지만 오히려 밀리고 있다. 언론에 의하면 전쟁터에 1950년대 탱크가 등장했다고 하는데 이는 러시아가 얼마나 무기와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는 푸틴 대통령이 최후 수단인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것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뒤 국제질서의 중요한 관행으로 자리 잡아온 핵무기 불사용의 금기를 깨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핵 비확산 체제가 흔들리고, 북한의 핵전략에도 아주 나쁜 메시지를 전달해 우리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규범 기반 국제질서에 대한 두 번째 도전은 중국 요인이다. 중국은 1970년대 초 이후 리처드 닉슨 미국 행정부의 포용정책 덕분에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뤘다. 중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980년 미국의 6%에서 2020년에는 70%까지 따라잡았다.
경제력이 성장하자 자신감이 넘친 중국은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를 목도했다. 그 후 역사상 대부분의 상승 대국들이 그랬듯이 중국은 도광양회 전략을 버리고 미국에 맞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고 대만의 무력통일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규범 기반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까지만 해도 기존의 대중 포용정책 기조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7월 6일 340억달러 상당의 중국 상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을 협력 파트너가 아니라 미국과 미국 주도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국으로 규정하며 대결정책으로 나아갔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단독 플레이를 하던 트럼프 정부와 달리 동맹들과 연합전선을 형성해 훨씬 조직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제 미·중 대결은 경제, 외교, 군사, 기술, 이념 분야에서 고착되면서 패권 경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군사 분야에서 대만 문제가 심각하다. 마오쩌둥 덩샤오핑처럼 역사적 반열에 오르고 싶지만 그들에 버금가는 업적이나 권위가 부족한 시진핑 주석은 대만 통일을 자신의 최대 과업으로 내세우려 한다. 자신의 임기 연장이 대만 통일을 위한 것이라고 측근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만 주민들의 마음은 중국을 떠나고 있다. 홍콩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것을 보고 중국 정부가 내세운 ‘일국양제’가 레토릭에 불과하다고 인식하고부터다.
이런 대만 내부 흐름에 중국 정부는 더 다급해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의 대결이 심화하자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의 현상변경 의도를 의심하면서 더 공세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중 관계의 기본인 ‘하나의 중국’ 원칙까지 무력화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다.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이나 낸시 펠로시 당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의 차이잉원 대만 총통 면담이 그런 사례다. 중국은 펠로시, 매카시 두 하원의장의 총통 면담에 대만 봉쇄 훈련으로 대응했다.
이같이 중국 대만 미국 내부의 상황이 절제되지 않은 채 서로 얽혀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전쟁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1년 3월 인도태평양사령관 필립 데이비슨 제독은 상원 청문회에서 2027년 안에 중국이 대만 장악을 시도할 것이라고 발언했고, 2022년 1월에는 마이클 미니한 미 공군 장군이 부하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2025년에 미·중 간에 전쟁이 터질 것 같다고 언급했다. 2024년 1월 대만 총통선거, 11월 미국 대선이 끝난 다음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중국이 공격 기회로 삼을 것 같다는 전망이다.
3주 전 만난 전직 고위급 미 국방부 인사는 현재 미·중 간에는 군사적 대화 채널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소통이 없으면 우발적 사고가 오해와 오판 때문에 통제되지 못한 채 끔찍한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대만에서 벌어질 수 있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다양한 종류의 치밀한 시나리오를 조용히 작성하고 대비책을 마련해 둬야 할 것이다.
규범 기반 국제질서에 대한 세 번째 도전은 북한이다. 북한은 작년에 100기에 가까운 각종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리고 핵무기는 외부 침략에 대한 억제용이라는 2013년 이후의 입장을 버리고 선제 사용할 수 있다고 2022년에 법을 바꿨다. 동시에 남한 전역을 타깃으로 전술핵 실전 배치를 추진하고 있다. 북한의 군사 위협이 과거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달라진 것이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간 핵협의그룹을 만들고 전략핵잠수함이나 전략자산의 정례적 배치에 합의한 것은 고도화된 안보 위협을 억제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 안보 위협의 고도화는 미·중 대결 심화 속에서 한국이 어떤 외교전략을 택할 것이냐에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다. 북한의 안보 위협은 한·미 동맹을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로 만들었다.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관계는 “얼마나 더 잘사느냐, 덜 잘사느냐”의 문제다. 그렇기에 미·중 대결이 심화하는 상황에서는 당연히 한·미 동맹에 1차적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다. 동맹외교와 이른바 균형외교를 동격으로 놓고 비교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한·미 동맹과 한·일 관계를 강화해 북한 위협에 대한 억제를 더 튼튼히 하고 서방의 다양한 국제 네트워크에 참여해 공급망 문제 해소, 기술력 강화, 글로벌 공공재 제공에 나서야 할 것이다. 중국에는 심각한 북한의 안보 위협 때문에 한·미 동맹을 중시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 호혜와 상호존중의 원칙 아래 우호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
엄중한 외교 안보 환경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론 통합이다. 위기에 당면한 우크라이나 국민, 중국의 경제제재에 단합해 단호하게 맞선 호주 국민이 본보기다. 국론 통합을 위해 정부는 국민에게 어떻게 국제정치가 격변했고, 그 상황에서 왜 특정한 외교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 타당한지 성심껏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정부가 그렇게 하면 야당도 자신들의 대안 정책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설명하려 할 것이다. 그래야 여야 간에 생산적이고 진지한 토론이, 그리고 국론 통합이 가능해질 것이다.
정치권과 국민이 지금처럼 분열돼 있으면 우리 상대국들은 그런 약점을 활용해 이득을 보려 할 것이다. 이 경우 나라 전체가 중심을 못 잡고 갈지자 행보를 할 것이며, 21세기판 구한말의 비극이 재연될 것이다. 엄중한 외교 안보 현실에 걸맞은 비상한 국민적 의지와 자세가 필요하다.■ 윤영관 이사장은
1975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1987년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박사
1987~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조교수
1990년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2003~2004년 외교통상부 장관
2016년~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2022년 미국 하버드대 시니어 방문교수
2023년~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