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간 '외교 슈퍼위크' 치른 윤 대통령…美·日 이어 EU와도 '밀착'

11년만에 EU '투톱' 동시방한

尹 "EU는 가치 공유하는 동반자
탄소세 부과, 경제협력 제약 안돼"
연내 반도체 공급망 대화 개최

대통령실 "中·러와 계속 소통
적절한 때 한·중·일 회담 논의"
윤석열 대통령과 유럽연합(EU) 지도부는 2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8년 만에 정상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윤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앞서 EU 샤를 미셸 상임의장(왼쪽),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오른쪽)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유럽연합(EU) 샤를 미셸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고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한·EU 정상이 공동성명을 채택한 건 2015년 이후 8년 만이다. 이날 일정을 끝으로 지난 17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으로 시작된 윤 대통령의 ‘외교 슈퍼위크’가 마무리됐다.

윤 대통령과 EU 정상들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한·EU 그린파트너십 및 보건파트너십 체결 △한·EU 외교장관 전략대화 신설 △한·EU 공급망·산업정책대화 연내 개최 등에 합의했다. EU 상임의장과 집행위원장이 함께 방한한 것은 2012년 이후 11년 만이다.양국 정상은 한·EU 그린파트너십을 체결하면서 기후행동과 환경보호, 에너지전환 등 분야의 협력을 포괄적으로 확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함께 체결된 한·EU 보건파트너십을 통해서는 △의료대응 수단 연구·혁신·제조 △심각한 초국경적 보건 위기 대비 △백신 접종 및 생산 역량에 대한 제3국 지원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과 EU 지도부는 북한의 핵실험을 강하게 비판했다.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여타 대량살상무기,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및 기존 핵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전 영토에서 즉각적으로, 완전히, 무조건적으로 철수해야 한다는 내용도 성명에 담겼다.

양국은 2026년부터 탄소 배출량이 많은 수입품에 ‘탄소세’를 부과하겠다는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및 역내 대기업에 대한 공급망 감사를 하겠다는 핵심원자재법(CRMA) 관련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EU가 추진하고 있는 일련의 입법이 양자 경제협력에 제약을 가져오지 않도록 긴밀한 소통을 지속하기로 했다”고 밝혔다.한국과 EU는 현행 산업정책대화를 공급망·산업정책대화로 확대해 연내 1차 대화를 개최하기로 했다. 반도체 공급망 안정을 위한 공동 메커니즘을 개발하고,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공동 연구개발도 하기로 했다. 양국 정상은 한국의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 가입 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호라이즌 유럽은 EU 최대 규모의 연구지원 프로그램이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 일본에 이어 EU와도 ‘밀월’ 관계가 형성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EU는 자유, 인권, 법치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소중한 동반자”라고 평가했다. 미셸 상임의장은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며 “EU와 한국의 심도 있는 협력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출신인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한국의 놀라운 성과를 보면서 민주주의의 힘을 체감했다”며 “현재 한반도는 갈라져 있지만, 자유를 향한 갈망은 언제나 독재자의 힘보다 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관계를 확고히 하면서 중국 및 러시아와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과 관련,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한국과 중국 양자 간 전략대화를 시작해보려 하고, 계획도 오가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 차장은 YTN에 출연해 “중국도 현안에 대해 한국, 일본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며 “적절한 시점에 한·중·일 정상회담도 얘기할 분위기가 오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국제사회 제재에 참여하면서 반드시 필요한 천연가스 등 일부 품목에 대해 최소 규모로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