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고래' 부커상 선전…한국문학 세계화 기대감 확산

2016년 '채식주의자' 필두로 해외시장서 선전 잇따라
'고래', 번역원 지원으로 일·독·러·튀르키예어판도 출간
천명관의 '고래'가 작년 정보라의 '저주토끼'에 이어 2년 연속으로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는 등 한국문학이 세계 무대에서 잇따라 선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번역만 훌륭하면 우리 고유의 이야기로도 얼마든지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열 수 있다는 자신감이 국내 문학·출판계에 다시 한번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24일 문학계에 따르면 한국 문학작품이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의 문을 두드린 것은 2016년부터다.

그해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의 번역으로 부커 인터내셔널상을 탄 이후 한강의 작품들이 잇따라 영역되면서 세계 독자들 사이에서 한국 문학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이런 상승기류를 타고 2018년 한강의 또 다른 소설 '흰'이 다시 한번 부커 인터내셔널의 최종후보에 올랐다.

이어 작년에는 장르문학의 성격이 강한 정보라의 소설집 '저주토끼'가 같은 상 최종후보에 포함됐다.
최종후보는 아니라도 2019년 황석영의 '해질 무렵'과 작년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이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의 1차 후보에 오른 바 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부커상 수상 이후 현재까지 전 세계 40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정보라의 '저주토끼'는 부커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해외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18개국에 판권이 팔려나갔다.

부커상 후보에 오르지 않은 작품 중에서도 영미권에서 현지 매체들의 호평을 받으며 출간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최근 인기 작가 신경숙이 2021년 내놓은 여덟번째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지난 달 미국 아스트라 출판사에서 영어판이 출간됐다. 이 작품은 미국과 영국 외에도 중국, 루마니아, 핀란드 등 8개국에 판권이 수출됐다.

'저주토끼'처럼 기존의 '순수문학' 분류에 들어가지 않는 장르문학 중에서도 세계인들의 관심을 끄는 작품도 있다.

올해로 출간 20주년을 맞은 이영도의 판타지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전 4권)는 유럽과 영미권의 대형 출판사 4곳과 계약을 확정해 올해 겨울부터 순차적으로 현지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이 소설은 유럽의 한 출판사에 선인세 3억여 원에 팔려 한국 출판물의 수출 선인세 중 최고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강의 '채식주의자'의 선전을 시작으로 한국 작품이 영·미권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선전하는 배경에는 민관의 체계적인 지원 노력도 한몫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례로, '채식주의자'의 경우 번역가인 데버러 스미스가 샘플 번역본을 영국 포르토벨로 출판사에 보낸 뒤 대산문화재단이 번역 작업을 지원한 덕분에 출판사 측이 상업적 성공에 대한 부담 없이 영어판을 출간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 등은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목표로 꾸준히 번역가를 지원하고 양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은 한국문학의 고유한 가치와 예술성을 해외에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번역원은 해외 출판사나 판권 에이전시 등에 한국문학의 번역출판을 지원하는 한편, 국내에서는 번역아카데미 운영, 한국문학번역상 시상 등 다양한 통로로 '문학 한류'를 뒷받침하고 있다.

천명관의 '고래'도 영어판 외에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일본어, 러시아어, 독일어, 튀르키예어판이 출간됐으며, 현재 이탈리아어 번역도 진행 중이다.

또 번역원의 지원으로 '고래'의 미국판이 지난 9일 미국 아키펠라고 북스에서 출간됐다.

'고래'의 미국판을 낸 아키펠라고 북스는 '고래'의 번역가 김지영(42)과 인연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구병모, 신경숙, 김영하, 정유정 등 한국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20년간 영미권 소개한 김씨는 대학 졸업 후 뉴욕에 있는 아키펠라고 북스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며 번역일을 하는 그가 '고래'와 만난 것도 아키펠라고 북스와의 인연 덕이다.

비영어권 책을 출간하는 이 출판사는 천명관의 영국 에이전시와 '고래' 영문판 출간 계약을 맺고, 이 소설 특유의 한국적 정서와 냉소적인 유머를 살릴 번역가로 김지영을 택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천명관의 또 다른 소설 '고령화 가족'의 번역도 도와 현재 번역원 지원 기준으로 6개 언어로 번역됐다. 번역원 관계자는 "2016년 한강이 아시아 최초 부커상을 받은 뒤 7년이 지난 지금, 한국 작가와 작품의 국제적 인지도와 영향력이 괄목할 만큼 높아졌다"며 "해외 수요에 발맞춰 다양한 장르의 다채로운 한국문학 작품이 폭넓게 소개되도록 지원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